2019. 3 빈센트 반 고흐, 중독, 영혼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들은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 '50년' 이 지나며 그의 제수 요한나에 의해 빛을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답게 어둡고 칙칙하던 그림을 그리던 그는 파리로 가게 되면서 무채에서 유채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아를에서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그의 유작들이 탄생되었고 1888년에 그린 '해바라기'가 거래된 딱 한 번의 시가는 400억 정도였으며 지금은 대략 '1000억' 정도의 가치를 예상한다. 고흐의 유일한 특별함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 작품에 대한 편지를 썼으며 그의 편지 600 통 정도와 그림 하나까지 쉽게 팔아넘기지 않고 소장의 가치를 키워준 요한나가 있었기에 현대미술을 주역으로 이끈 '고흐'가 될 수 있었다. 살아생전에는 딱 한 점의 그림이 판매될 정도로 배고픈 화가였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느끼는 대로를 표현했고 그림에 색깔과 감정을 이입했다. 해바라기 그림 하나에도 모두 싱싱한 꽃이 아니며 시든 꽃, 싱싱한 꽃과 지저분함이 함께 묘사되는 그의 그림에는 본인의 나빠지는 건강과 삶의 애환이 함께 담겨 있다. 고흐의 집과 방을 그릴 때도 초라한 방을 상상에 담아서 보색을 칠하며 보이는 것이 아닌 느끼는 대로를 색칠했다. 해바라기도 좋지만 조금 현대화된 것 같은 양귀비꽃과 데이지 그림이 무척 생동감이 느껴져서 자주 보게 된다.
예전 대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1800년대의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예술의 힘을 믿게 되고 더욱 소중해진다. 역사는 흐르고 예술적 가치는 따질 수 없다. 사람이 태어나 유일한 한 가지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심장이 떨릴 만큼 숭고한 일이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빛을 더 발하게 된다. 영혼을 담는 마음으로 그대의 것을 바라보며 오늘을 쓰라.
(2019.3)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떠나 머무는 ‘2년’ 동안 ‘23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33세’라는 나이에 알코올 도수가 무려 45~74도가 되는 압생트에 빠졌다. 독한 술인 만큼 1인당 ‘3잔’ 이상은 팔지 않았다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설탕에 내려 마셔야 음주가 가능한 진한 술에 중독되어갔다. 스스로도 파리를 떠나며 몸과 마음에 심한 병이 들었다고 인정했고 남 프랑스 ‘아를’로 떠난 이유가 바로 ‘색’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동생 테오에게 말한다.
천상에서 볼 수 있는 하늘빛 푸른색과 태양까지도 온통 유황빛으로 빛나고 있음에 감탄하며 고흐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를에서 순도 높은 강렬한 색을 두 눈으로 발견하고 그곳에 머물며 극단적인 색의 영감을 받아 사용하게 되는 절실함을 깨닫는다.
이미 그의 인생과 육체와 정신까지 중독에 극을 달하며 ‘노란 집’과 ‘아를 밤의 카페 ‘를 완성했으며 그림의 모든 사물과 자신의 집까지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압생트 술의 주요 원료인 산토닌 중독 산토닌의 주원료인 향쑥에 중독되어 ‘황시증’에 걸리게 되고 노란색이 아닌 것도 노랗게 보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이미 심각한 상태의 중독을 조금 더 차원이 높은 고음을 찾아낸다며 더 마시다가 결국 1888년에 그의 예술과 생명을 불태우는 ‘해바라기’라는 노랑의 극치를 발견하게 되는 위대한 명작을 남긴다. 이글 거리는 태양을 해바라기의 심장 속에 집어넣게 되는 ‘예술의 혼’ 이 그림 속에 박힌 이유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고흐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예술가들 중 피카소, 모네, 헤밍웨이, 모파상 등 많은 사람들이 ‘압생트’라는 술을 즐겨 마시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게 되자 프랑스 정부는 결국, 1915년에 압생트 제조, 판매 금지법을 발표한다.
독한 술이건 약하건 마시지 못하지만 왜 그들은 그 술에 취해야 했을까, 그의 힘을 빌어 예술의 극치를 만들어 낸 녹색의 중독이 전하는 그들의 치열한 정신과 영혼이 담겨 있기에 지금 까지도 귀한 가치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사색하게 된다.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