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을 좋아하지만 배영을 못하는 수영인의 비애
"어떤 영법이 제일 좋아?"
"배영이 좋아."
어떤 수영 영법이 좋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곤 했다.
정말 배영이 좋았다. 내가 장기하라면 배영으로 노래를 만들어 비비에게 불러달라고 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배영이 좋은 이유 4가지를 이야기해 볼까?
1.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누워서 하는 운동이라는 점인데, 그것도 물 위에 누워서!
배영을 할 때면 진정 물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2. 배영은 자유형에 비해 호흡하기 편했다.
3. 야외 수영장 배영을 할 때면 하늘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4. 배영 발차기가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배영을 할 때 오히려 발차기만 해도 쑥쑥 잘 나아가는 편이라 배영 발차기 마저 좋았다.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 수영을 배운 기억이 몸에 남아 있어, 발로 수영을 하는 스타일(발차기에 강한 스타일)이라 배영 발차기를 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난생처음 오리발을 신었을 때 시도해 본 영법도 배영이었다. 저녁 수영을 하던 때엔 발에 날개를 단 듯 슝슝 앞으로 나아가던 감각이 좋아서 강습 시간마다 생각했다. 오늘은 배영 안 하나?
그랬던 내가 얼마 전 토요일 아침 자유수영을 하던 중 같은 레인 회원님에게 어떤 영법이 좋냐는 질문을 받고는 망설였다. 배영이 좋다는 말이 바로 툭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자유형도 어깨 롤링이 잘 안 되고 뺑뺑이(장거리 자유형)가 힘들어서 좋다고는 말 못 하겠다. 우물쭈물하는 내게 그 친구가 말했다.
"접영 좋아하죠? 접영 잘하던데요."
자유수영할 때도 접영이 하고 싶어지는 걸 보면, 요즘은 접영이 좋아진 것 같다. 한 팔씩 저어야 하는 자유형, 배영보다 양팔을 쓰는 평영과 접영이 박자 맞추기 쉽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난 후 내 마음도 변해버린 걸까. 그토록 어려워했던 평영도 글라이딩을 하니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 좋아졌고, 그토록 힘들다고 생각했던 접영도 입수킥과 출수킥을 구분할 줄 알게 되니 좋아졌는데 배영을 향한 내 마음은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배영을 좋아하는 마음이 식어버린 건 내가 배영을 못하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배영은 못하는지 몰랐냐고? 나는 내가 배영을 잘하는 줄 알았다. 배영을 잘한다는 착각이 착각인지 꿈에도 몰랐다. 새벽 수영을 하며 초급반 선생님에게 배영 스트로크를 배우기 전까지는.
지난해 6월의 어느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은 핀데이. 당시 초급반 1번이었던 나는 1번 위상(?)에 걸맞게 배영 타임에 오리발의 힘으로 신나게 나아가려다 수영 선생님에게 탁 붙잡혔다. 강사님이 내 왼팔을 붙잡은 채 말했다. “팔을 뻗어요."
응? 이미 뻗은 팔을 어쩌란 말인가 싶어서 오른팔 뻗으니 왼팔을 뻗으라고 했다. “팔 뻗었는데요?”라고 했더니, 팔이 구부려졌다는 말이 돌아왔다. 강사님은 내게 배영을 할 땐 팔꿈치에 힘을 줘서 쭉 뻗어야 연결된 등 근육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배영을 할 때 내 팔이 구부러져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초급에서 중급반으로 온 후, 책 마감을 하느라 매일 새벽수영을 하는 대신 월수금은 새벽수영 화목토는 오후수영 강습을 받은 적이 있다. 아침에 원고를 좀 써놓고 낮에 수영하며 기분전환 한 후 오후에 다시 원고를 다듬자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오후 수영 강습 시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성인 풀장 5개의 레인 중 3개 레인이 고막이 터지게 음악을 틀어놓고 아쿠아로빅을 하는 동안 2개 레인에서 강습을 받는 풍경이라니. 매번 저놈의 음악소라에 수영 선생님 목이 나가지는 않을까, 트로트 음악에 맞춰 어떻게 수영하지 같은 생각을 하며 수영을 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어느 핀데이에 수영 선생님이 찍어준 나의 배영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이 정도로 못한다고? 배영 스트로크를 할 때 내 팔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구부러져 있었다. 팔이 구부러진 탓에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처럼 삐뚤삐뚤 앞으로 나아갔다. 부끄러웠다.
지난해 11월 중급반 수영강습의 어느 날 배영 주간도 기억난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 중급반의 경우, 한주에 한 영법씩 집중적으로 훈련하는데 그 주는 배영 주간이었다.) 그때는 책 교정을 보던 때라 원고 마감 때보다는 가뿐한 마음으로 수영 강습에 집중했다. 수영 선생님이 팔은 배영, 발차기는 접영을 하며 손 발 박자를 맞추는 드릴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원비트로 배영 연습을 하자 내 몸은 삐걱거렸고, 물에 빠진 고장 난 로봇이 된 기분이 들었다. 수영 선생님에게 투덜댔다.
나: "너무 어려워요."
수영 선생님: "어려워도 해야지. 그래야 늘지."
그래, 일도 수영도 “제대로”하려면 어렵지. 어려워. 어려워도 자꾸 해야 늘지. 하다 보면 늘지 늘어. 하지만 수영 강사님 말 한마디에 배영이 늘지는 않았다. 연말에 촬영한 영상 속 나는 여전히 음주 운전하는 사람처럼 삐뚤빼뚤 배영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어려워도 해야지 그래야 늘지 라는 말을 책 만드는 일에 적용시키니, 1교, 2교, 3교, OK교까지 교정을 볼 때 한 자 한 자 꼼꼼히 확인하고 수정하는 인내심은 늘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배영주간은 다가왔다. 수영강습을 할 때면 회원 중 한 명을 모델로 어떻게 영법을 해야 하는지 그 영법을 잘하기 위해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영 강사가 회원 중 한 명을 모델 삼아 설명하고 하는데, 그날은 수영 강사님이 내게 나와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전히 배영 스트로크를 제대로 못하는 게 부끄러워 모델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안 나가겠다고 절레절레, 수영 선생님은 나오라고 손을 까딱까딱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내 옆에 있던 회원님들에게 등 떠밀려 나가 시범을 보이긴 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배영을 못하는 게 죄도 아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심정을 생각하면 또 이해가 간다. 사실, 나는 늘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매번 부끄럽다. 매번 글을 쓰고 나서는 더 잘 쓸 걸이라고 생각 한다. 매번 더 시간과 마음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한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썼으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누가 볼까 부끄러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상급반 스타트데이(상급반 회원들이 스타트 훈련하느라 수영장 밖에 서 있음)에 상급반 회원들이 걸어서 레인 옆으로 지나가면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볼까 부끄럽다. 왜 저렇게 하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만 같다. 중급반 1번 레인 레벨만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왜 부끄러울까.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부끄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지난 10개월간 (거의) 매일 새벽 수영을 하며, 에이 오늘 수영 괜히 했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SNS에 헤시태그 #오수완 #얼죽수 등을 단 글을 올릴 만큼 뿌듯하고 개운했다. 새로 배운 드릴이 잘 안 될 때는 답답하고 아쉬워도, 아직 잘 못하는 것은 잘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겠지. 성장 과정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헤엄치고 싶다.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누가 좋아하는 영법이 뭐냐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배영이 좋아요. 물 위에 누워서 하는 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