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타겟팅은 죽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평일 월요일 오전 10시,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아파트 현관 앞으로 나섰다. 예상과 달리 재활용 쓰레기장 앞은 이미 꽤 북적거리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30~40대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떠올랐다. ‘이 아파트 실직률이 갑자기 높아졌나?’, ‘모두 특별한 직업을 가진 걸까?’ 그러나 금방 깨달았다. 문제는 내 고정관념이었다. 내가 알던 직업의 형태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사실 이 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긴 시간 동안 변화를 거듭해 왔고, 특히 COVID-19 팬데믹은 직장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9 to 6"이라는 틀 안에 살지 않는다. 자율출근제와 재택근무가 흔한 일이 되었고, 직장에서 연차를 쓰는 일 역시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이제 남성들도 육아 휴직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전업 주부 역할을 맡는 남성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후배의 돌잔치에 갔는데, 아기의 아빠가 육아휴직 중이었다. 그 친구는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돌보면서 엄마들 사이에서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며칠 전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업무 중인데 제주에 있다고 했다. 며칠 후에는 부산, 세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요즘엔 회사에서 ‘워크케이션(workcation)’이라 부르는 형태가 인기라고 했다. 일과 휴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계 광고주와 일할 때 자주 들었던 표현, "After Five!"는 이제 일본만의 유행어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저녁 5시 이후의 삶은 일상화되었고, 그 방식 또한 무척 다양해졌다. 우리가 알던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은 이미 책 속 이야기로 밀려났다.
대학 시절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영어 실력을 늘려보겠다고 룸메이트 JUDD와 함께 체육 서클에 가입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구와 농구 시합을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진행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성별이 능력이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의 스포츠 문화는 더욱 놀랍다. SBS의 ‘골때녀’를 보며 깜짝 놀란다. 여성 셀럽들의 수준 높은 플레이는 단순히 남성들의 스포츠였던 축구의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도 마찬가지다. 성별은 무의미하고, 오직 강력한 피지컬만이 존재한다.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성별과 관계없이 강력한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야구장 풍경도 확 달라졌다. 야구 규칙을 남자 친구에게 묻던 여성들은 이제 야구 선수들의 전력을 훤히 꿰고 있으며 응원가까지 완벽히 숙지하고 즐긴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성별이란 더 이상 기준이 아니다.
소비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얼마 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갔을 때 충격을 받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들이 여유롭게 오마카세를 즐기고 있었다. 더 이상 나이가 많거나 소득이 높은 사람만 고급 레스토랑을 찾는 시대는 아니다. 한쪽에서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즐기던 사람들이 다음날엔 유명 호텔 레스토랑에서 멋진 저녁을 보낸다. 명품 백을 메고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상품을 고르는 것이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소비의 단계를 넘나 든다. 이들이 바로 '엠비슈머(ambisumer)'다. 고정된 소비 계층은 사라지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소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느 주말, 나는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목격했다. 교복을 입은 그들은 익숙하게 브랜드와 디자인을 논하며 고가의 지갑을 사기 위해 주저 없이 카드를 꺼냈다. 그 다음날 같은 아이들이 학교 앞 문구점에서 귀여운 캐릭터 펜을 즐겁게 고르는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과연 '20대 직장인 남녀', '50대 은퇴 예정자'와 같은 전통적인 타겟팅이 아직도 유효한가? 세상의 변화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행동 패턴을 가능하게 했고, 한 명의 타겟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제 우리는 타겟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파악해야만 우리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
과거에는 광고 브리프에서 타겟팅은 간단히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겟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광고의 방향과 메시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타겟은 변하고 있다. 몇 달 후에는 얼마나 더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해 있을까? 성공하는 광고는 타겟의 변화를 뒤쫓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광고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할지, 어디에 있을지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 광고의 미래다. 우리는 더 이상 인구통계학적 특성으로 소비자를 가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훨씬 다양하며, 훨씬 예측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타겟팅은 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살아 움직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가 시작되었다. 타겟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타겟의 다양한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광고 타겟을 정의하는 방법이다.
"Advertising for everyone is advertising for no one."
"모든 사람을 위한 광고는 아무도 위한 것이 아니다."
- Howard Goss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