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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아시스, 교보문고

아직도 그리운 그곳.

by 고요한밤

1.

80년대 당시 32번 서울 시내버스를 타면

밀리는 길을 돌고 돌아 1시간 걸려

빨간색은 종로 2,4,6가에

파란색은 종로 3,5가에 정차했다.

주로 종로서적과 YMCA 건물을 가려면

극장가와 파고다 공원 지나

종로 2가에 정확히 내려야 했다.

교보문고나 광화문 쪽 가려면

파란색 32번을 잘못 탔다간

종로 1가 가기 전 사거리에서

을지로 쪽으로 좌회전을 하기에,

주로 빨간색 32번을 타고 종로 2가에 내려서

주변을 눈요기하며 광화문 사거리까지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는

길건너에서 30번 버스를 타면

집으로 오기까지 걷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어서

비가 많이 오거나 추울 때에 특히 편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버스 타고 다녀오는

종로 거리, 대형서점, 특히 교보문고는

문화적 갈증에 시달리던 사춘기 여중생에게

손에 닿을 수 있는 노다지 느낌이었으니.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쪽에 기대고 서서

제목만으로도 재미있어 보이는

빳빳한 새 책, 다양한 소설들을 맘껏 읽어 내려갔다.

지금은 앉아서 책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만

그 당시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고.

왕복 회수권 정도만 있으면

얼마든지 책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는 기쁨에

몇 시간 내내 서있느라 고단한 다리와

환기 안 되는 공간에서 뻑뻑했던 눈을 비비며

귀가하는 버스에 몸을 싣던,

그러면서도 유리창에 비친 눈빛만은 반짝이던

10대 시절의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2.

10대 시절에 이어 20대 시절에도

교보문고는 나라는 참새에게

따끈한 방앗간이 되어 주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받은 월급을 받게 되면

가장 먼저 교보문고로 달려가

내돈내산 그간 사고 싶었던 책을 한 권씩 샀다.

주변 지인들의 생일 때 사는 책 선물은

학교 안의 학생회관이나

학교 앞 서점을 주로 이용했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책을 고를 때에는

꼭 교보문고를 가서 눈요기를 실컷 즐긴 후

딱 한 권을 고르고 골라 계산을 마치고

속표지에 이러쿵저러쿵 끄적거려서 서명을 남겼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책 오더하고

전자책도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내게 종이책 소장에 대한 애착이란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역사인 것 같다.


3.

이른 결혼과 출산, 해외로의 이사를 거치며

마음 한편으로 항상 그리움이 남았던 곳들을 꼽자면

오래 다닌 대학 캠퍼스 말고도

교보문고 서점이 계속 생각이 났다.

이후 곳곳에 지점이 생겨서

요새는 광화문 본점 말고도

9호선 신논현 강남점도 자주 이용한다.

<연애시대> 드라마에서 남주가 근무하는 곳이

교보문고 분당 서현점 촬영이었어서

더욱 재미있게 보았던 생각도 난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잠시 내 책 구입을 미뤄두고

나같이 결핍을 느끼지 않게

아이의 책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싶었어서

서울에 갈 때마다 아이를 자주 데리고 갔다.

아이는 이마트와 청계천을

우리 사는 외국으로 가져오고 싶다 했는데

내 바램으론 교보문고를 통째로 옮겨오고 싶었다.


이번 9월 서울을 가게 되면

혼자 호젓한 시간을 따로 내어

책내음을 맡으며 책산책을 누려보고 싶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그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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