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두애 Oct 24. 2020

여러분,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일입니다.

끝까지 강아지를 사랑해주시길,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갈 일이 생겼는데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방구가 신경 쓰여 같이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푸돌이가 서운해 할 수도 있으니 몰래 스리슬쩍 방구만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나갈 때쯤 푸돌이가 눈치를 채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두 마리 모두를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한사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선 아내는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제게 푸돌이를 잘 봐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죠.

앵그리 황푸돌, 눈이 세모다.

집에 들어온 저는 나름대로 푸돌이와 놀아주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맨날 야근만 하다가 늦게 들어와 아기를 돌볼 줄 모르는 아기 아빠와 같은 심정이었을까요. 푸돌이는 저랑 얼마 동안 시간을 보내더니 이내 곧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든 푸돌이를 보고 저도 제 할 일을 했었고요. 아마 푸돌이는 저와 있는 시간이 따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내가 외출을 마치고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자 저는 푸돌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저희를 발견한 아내는 푸돌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만 그녀의 품에는 방구가 안겨있었죠. 이를 본 푸돌이는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동그랗기만 했던 푸돌이의 눈이 세모가 되었습니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강아지에게도 표정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또 강아지마다 성격이 달라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푸돌이는 그처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강아지였습니다. 그런 푸돌이가 지금 이 상황이 무척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푸돌이를 쓰다듬어 주려 손을 들어 다가가자 푸도리는 앞다리를 내밀어 손을 치우라고 막았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눈썹은 찌푸리며 아내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아내만 졸졸 쫓아다니던 푸돌이가 심통이 제대로 나니 아내한테 단단히 삐쳤습니다.


'너 누구냐'하는 표정의 푸돌이에게 아내는 연신 사과했습니다.

"푸돌아 미안해~~~ 누나가 미안해ㅠㅠ 방구만 데리고 가서 많이 서운했지 ㅠㅠ"

아내가 방구를 편애하진 않습니다만, 최근 방구가 뇌 쪽 종양으로 신경 증상을 겪은 뒤로 아무래도 아픈 아이에게 손이 먼저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푸돌이는 그간 쌓였던 것이 폭발한 것일까요? 제 눈에는 마치 그런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푸돌이는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영양제와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화가 금세 풀렸습니다. 아내를 쳐다도 보지 않던 푸돌이가 이제 아내와 뽀뽀도 합니다. 그간의 서러움이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일까요? 잠시 잠깐 억울하고 서운했겠지만 이내 아내의 사랑에 금세 화가 풀린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는 푸돌이가 느낀 감정의 흐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매불망 아내만 기다리는 푸돌이, 지금은 다시 처가댁에 넘어가서 처가댁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에피소드를 통해 깊게 깨달은 점은 강아지도 사람처럼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 고마움과 서운함 이런 대부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들도 다 압니다. 다만 인간의 말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누군가에게는 이 것이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생소한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며 키우던 반려견 2마리(베리와 보리)가 있는데, 사실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강아지가 이렇게 특별한 존재인지 말이죠.


이제는 가끔 부모님 집에 가면 잠시 동안이라도 머물러있는 시간만큼은 베리와 보리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귀여운 베리와 보리를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려오고 속상할 적이 많습니다. 잘해주지 못한 과거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랄까요? 저도 아내와 1년 반 넘게 살다 보니 참 많이 변했습니다. 아내의 그 따듯한 마음에 동화되어버렸습니다.


저희 집에는 아직 아기가 없습니다. 근데 아내는 애 키우는 집도 아닌데 방구를 안고 외출하는 그 날 기저귀를 챙겨서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약, 사료, 배변 봉투, 두터운 옷 등 마치 아기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지긋이 들어 노인이 되면 주변 가족들이 챙겨주고 신경 써줘야 할 것들이 많듯이 노견인 방구와 푸돌이도 그렇습니다. 손이 많이 가죠. 그러나 이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성가스러움은 견뎌내야 할 또는 이겨낼 수 있는 수고로움인 것이죠.


강아지와 같이 살기로 또 내가 주인이 되어 키우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때부터는 반려견입니다. 반려자라는 말이 평생을 함께할 이를 뜻하는 것처럼 반려견 역시 일생동안 같이 살아갈 강아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족입니다. 제 아내가 또는 제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면 그렇게 됩니다.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책임을 반드시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내는 한 번도 제게 방구와 푸돌이를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의무적으로 강아지들을 돌봤는데 자연스럽게 아내의 마음에 전이되어 강아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지요.


어쩌면 이런 제 모습에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이 바로 제 부모님일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강아지한테 잘해주고 깊은 애정이 생겼냐고 말이죠. 요즘 들어 부모님에게도 제 마음을 이식해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베리와 보리를 족의 일원으로, 끝까지 함께할 반려견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쉽진 않지만요.


개통령 강형욱 씨의 저서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를 읽고 저도 글을 쓰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아직 강형욱 씨만큼, 아내만큼 강아지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저같이 평범한 이들이 어떻게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그 마음을 여러분들에게도 전이시켜주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방구와 조금 친해진 이후로 방구가 가끔 제 품에 안길 때가 있는데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몸의 힘을 쭈욱 풀고 안깁니다. 그리고 편안한지 잠을 잘 잡니다. 나를 편안해하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지만 시간이 꽤 오래 흘러 방구의 입김과 침에 왼쪽 팔이 다 젖고 팔도 뻐근하고 저려옵니다. 그러나 손을 결코 놓을 수는 없습니다. 방구가 곤히 자는 모습에 차마 손이 안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제 나름대로의 헌신입니다. 이 아이를 위한 헌신 말이죠.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 려견과 펫 샵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저는 어느 펫 샵지나치다 아내에게 "자기야 나중에 결혼하면 요만한 새끼 강아지 키우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싫어! 나는 푸구(방구와 푸돌이의 줄임말)로 충분해"라고 대답하며 정색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모습에 저는 무척 당황했지만 이제는 아내의 마음을 십분 공감합니다.


잠퉁이들, 거기 내 자리야!!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강형욱 씨 저서에 나온 것처럼 반려견이라는 한 생명을 키우는 것은 결코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이나 장난감을 사는 게 아닙니다. 나의 우울증, 무기력함을 해결해주기 위한 도구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반려견을 통해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만큼 그 생명체를 위해 여러분도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도 10년 넘게 말이죠.


최근 TV에서 강아지를 키우려면 나부터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의 공익광고를 보았습니다. 시대가 참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TV 광고로 나오다니요. 강형욱 씨가 여러 강아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한 것도 한 몫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회는 반려견, 반려 동물에 대한 인식이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만연한 아주 느슨한 강아지에 대한 윤리의식, 유기견이 이렇게 많아지는데도 양심에 거리낌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사회의 모습이 우리 속에 내재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모습과 똑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점에 육아에 관한 책은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있고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습니다. 어쩌면 사람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니 당연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반면 반려견의 책은 저기 저 구석진 곳에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서점 최악의 공간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책의 종류도 몇 개 안되더군요. 반려견에 대해 전문가의 시선 말고 일반인의 시선을 느끼고 싶었는데, 사실 그런 책이 많이 없습니다. 이런 부족한 인식들 하나, 하나가 우리 사회의 왜곡된 결과를 가져다 오는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창하다면 나름 거창한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코너에 제가 쓴 글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발간하게 될 제 책이 그 코너에 놓이길 말이죠. 제가 방구와 푸돌이, 베리와 보리 그리고 아주 잠깐 임시 보호해주었던 유기견 써니(지금은 좋은 곳에 입양 갔습니다)를 위해, 무엇보다 강아지와 동물을 끔찍이 사랑하는 제 아내를 위해 조그맣지만 커다랗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도 노력할 테니 여러분도 끝까지 노력해주시길, 끝까지 강아지를 사랑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전 14화 남편의 독박 (개)육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