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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ul 31. 2023

가르치는 용기

시즌1, 에필로그

1학기가 마무리되고 방학을 맞은 지 며칠이 지났다. 방학 이후 첫 주말은 폭염이 기승이었지만 딸아이도 동참하겠다고 하여 온 가족이 광화문에서 열린 2번째 집회에 참석했다. 엄마 된 마음으로 더운 날씨가 걱정이 되어 조금 여유 있게 참석하려 했는데 웬걸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조바심이 가득한 길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우린 검은 물결 속 세 개의 점이 되어 우리의 바람을 함께 외칠 수 있었다.


교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은 배우고 싶다.


'이게 무슨 말이지?'싶을 만큼 당연한 말을 우린 목놓아 외쳤다. 딸아이는 외치다 말고 멈칫하더니 눈이 동그레진다.

"엄마, 난 뭐 그렇게 많이 배우고 싶진 않은데..."

웃음이 났다.






이런 방학은 처음이었다.

뒤숭숭하고, 우울했다. 기쁨보단 답답함이 가득했다.

마음만큼 어질러진 집을 집회 다녀오고 꼬박 이틀 정리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어질러진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한가득 버리고, 분리수거까지 하니 공간이 가벼워졌다. 이제야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올해 6학년을 맡을 때 걱정했던 학기 초가 생각났다. 학생 지도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겪어 온 바 학교의 여러 모습들은 점점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교실 상황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학부모 민원에 안절부절못하며 교사만 들들 볶는 학교나 학생과 관련한 모든 시스템을 학교에 밀어 넣고(학교폭력, 돌봄, 늘봄 등) 너희 의견을 반영은 안 했지만 이제부터 너희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교육부의 모습은 더 이상 교사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뭐 죽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해보다 정 안되면 때려치우지 뭐.'라는 오기 어린 마음으로 시작했다. 가르치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남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몸담았던 17년간의 교직 생활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마지막 한 번쯤은 글로 써보면 좋겠다 생각했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교사임을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고 내가 교사인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기에 무명이지만 교사라 커밍아웃하는 것은 내게 큰 용기가 필요했다.



교사임을 터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모든 학교 일을 터놓을 수는 없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나 생각으로 인해 가뜩이나 욕먹는 교사들이 더 손가락질받게 될까 두려웠다. 또한 나의 이런 힘듦이나 문제의식이 개인적인 성향이나 나약함으로 인한 것일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작년부터 작가의 서랍 속에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꽤 많이 있다.


작년부터 작가의 서랍 속에 담겨져 있는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



'좋은 선생님'이라고 댓글로 칭찬을 받은 글도 들여다보면 딴 이야기와 방해 행동, 교사의 잔소리가 제거된 훌륭한 짜깁기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지난번 '사랑이야기로 대동단결'(사랑 이야기로 대동단결 (brunch.co.kr))에서 실리지 않은 이야기는 이렇다.


우리 반 K는 "그럼 내가 우리 부모님이 만난 이야기 해줄게."라며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던 아이들이 싫다고 하자 10분 넘게 큰 소리를 내며 수업을 방해하다 결국 교실 바닥에 엎드려 버렸다. 그 아이를 진정시키고 수업에 참여시키키기 위한 많은 노오오오오오력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학기 초 특정 교과 공부를 하기 싫다고 학교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던 그 아이는 '(자살을 시도한) 위기학생'이 되었고, 현재 담임교사로서 그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고 있다. 이 한 명을 위한 기본적인 수업 태도 및 교우 관계, 생활 지도만 하더라도 쉽지 않은데 우리 반에는 나머지 29명의 아이들이 함께 있으며 또 그 속에는 이 아이만큼 힘든 친구도 있으며, 모든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진다. 수많은 이야기를 힘날 때마다 손으로 움켜쥐어 글자로 새겨보는 중이다. 




이런 많은 일이 벌어지는 교실이야기를 한 학기 동안 써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별것 아닌 일이 별것이 된다.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때의 기쁨, 슬픔, 감정이 온전히 남는다. 무탈을 바라며 하루살이처럼 살던 하루하루의 기억이 이젠 글이 되어 남겨졌다.


교실 속에서 일어나는 배움의 찰나와 가치 있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기록하고 싶다. 교사는 그렇다. 많이 힘들고 지치지만, 때론 우린 그냥 직장인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위해 기꺼이 힘을 내는 그런 사람들이다. 



가르치는 일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2학기에도 시즌 2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그때의 내가 부디 힘이 남아있길 바라본다.



p.s.-혹시 가끔씩 읽게 되는 저의 글이 학교를 이해하고, 선생님을 이해하고, 자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전 23화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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