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Jul 13. 2023

사랑 이야기로 대동단결

저희 공부 중 맞습니다. 

"첫사랑 이야기해 주세요."

"첫사랑! 첫사랑!"


당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이다.




30명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되다니. 때마침 밖에서는 연일 알림을 보내던 집중 호우가 내린다. 

6학년 아이의 물속 고백 장면을 읽고 마음이 한껏 간지러워진 아이들이 나를 물고 늘어진다. 


"선생님, 제발요. 첫사랑 이야기해 주세요. "


비 오는 날과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는 고전 중의 고전인데 이 아이들은 어찌 알았을까?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겠지?

그래도 나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께 물어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역시 요즘 아이들은 빠르다. 



"부모님한테 이야기해 달라고 해."

"싫어요. 남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내 첫사랑?

찰나지만 첫사랑이 생각났다. 


'음. 내 첫사랑... 풋풋했지. 아차, 넘어가선 안 돼.'


추억 여행을 단칼에 끊어내고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 


"첫사랑? 기억도 안 나."

"그래도 이야기해 주세요."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5번 레인]의 하이라이트 고백 장면이 아이들의 마음을 몽글몽글 하게 할 줄은 예상했지만 진정 내게 화살이 올 줄 몰랐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게 있다. 대충 들으면 꽤 있어 보이는 이야기.


"얘들아, 선생님 남편이 있는데 첫사랑을 이야기할 순 없지. 끝사랑 이야기해 줄게."

"선생님, 첫사랑이랑 결혼 안 하셨어요?"


"어머!"

과장되게 놀란 척을 하며 비밀이라는 듯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니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선생님이.."


평소엔 그렇게 말 많던 녀석들이 숨죽이고 듣는다. 일부러 더 조용히 이야기한다.


"20대 때 유럽으로 여행을 갔어.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대학생 때 친구 3명이 간 거야. 여러 곳을 다니다가 스위스에 갔지. 스위스에 백패커스라는 유명한 게스트하우스를 갔거든? 게스트하우스는 기숙사 같은 곳인데 보통 방마다 2층 침대 여러 개가 있고, 음식을 먹으려면 공용 주방에서 요리를 해야 해. 요리를 해서 공용 주방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곳에 여행온 한국 남자들이 있는거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지내다보니 친해졌어. 알고 보니 같은 대학교에 다녔더라고. 그러다 지금의 남편이 되었지."


남편을 스위스에서 만났다니 낭만적이기도 한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포장하기에 꽤 훌륭했다. 물론 그 사이에 숨은 이야기는 더 많다. 하지만 우린 친구 사이가 아니라 선생님과 제자 사이이기에 이 정도로 요약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들은 더 난리가 났다. 이곳은 흡사 기자회견장이다.


"그래서 그때 사귄 거예요?"

"고백은 누가 했어요?"

"선생님 남편은 잘 생기셨어요?"


너도 나도 손을 든다. 


"얘들아, 사람 간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해.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이번엔 P의 첫사랑을 들어볼까?"



P는 갑자기 날벼락이란 듯이 나를 쳐다본다. 가장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P가 당황하니 웃음이 난다. P를 빼고 나 포함 우리 반 아이들은 신났다.


"아니, 주고받는 게 있어야지.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으면 너희 이야기도 해줘야지."

"그런 게 어딨 어요."

"알겠어. 그럼 선생님만 듣게 이따가 남아서 이야기해 주고 가."

"선생님, 저도 남을래요."

"안 돼. 선생님만 들을 거야. 이제 다시 수업하자."





혹시 수업인 줄 모르셨을 분들께 설명하자면 지금은 온책 읽기 시간이다. 

'5번 레인'

1장씩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누고 있는 중이다. 2학기 작가와의 만남이 은소홀 작가님으로 확정이 되어 함께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작가님, 꼭 뵙고 싶습니다. (brunch.co.kr) )학급 내 커플도 있고, 연애에 관심이 많은 아이도 있고, 수영 선수도 있고, 다른 종목 학생 선수, 예체능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많은 우리 반이라 책에 흠뻑 빠졌다.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고민도, 생각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주인공의 고백 부분을 읽고 있다 보니 이렇게 난리법석이다. 나도 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또래의 감정을 가진 아이들은 얼마나 그러할까. 아이들의 표정만 살펴도 재미있다. 




수업 끝에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교사의 모든 일은 기승전-당부, 기승전-(안전) 지도다. 


"요즘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성친구를 사귀기도 하지만 꼭 명심할 것은 올바른 연애를 해야 해. 혹시나 어떤 행동을 할 때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일단 하지 않는 게 좋아. 항상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바른 행동을 하길 바란다. 알았지?"


이전 21화 주식하는 아이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