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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Aug 01. 2023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너희 팝콘 처음 먹는 거 아니잖아.

학기말이 되니 이른 휴가를 위해 체험학습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우리 반 학생선수는 토너먼트 대회를 위해 방학 5일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직도 코로나의 기운은 미약하나마 기세를 떨치고 있어 1명의 학생은 코로나로 등교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출석을 하지 않으니 나이스며 출석인정 기안 등의 서류 작업은 둘째 치고서라도 마음이 바쁘다.


아이들이 최대한 적게 빠지는 날에 아이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영화를 보려고 달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수업과 연관 지어 놓았으므로 엄연한 학습이지만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영화 보기'는 공부나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에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물론 모든 이를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는가.


결국 최종 스코어 2명의 결석생이 있는 와중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호기롭게 영화에 과자까지 얹을 모양으로 전날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선생님, 영화 볼 때 과자 먹으면 안 돼요?"

"안 돼."

"아~~~~~~선생님. 그럼 음료수는요?"

"안 돼. 몸에 안 좋아. 물 마셔."


흡사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것 마냥 끈질긴 녀석들을 몰고 다닌다. 이럴 때는 최후의 방법이다.


"너희 너무 바라는 게 많으면 영화도 못 볼 수도 있어."


그제야 꽁무니를 내리고 흩어진다. 깜짝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팝콘이 있는데 아이들은 속도 모르고 과자 타령이다.


'녀석들, 영화엔 팝콘이지. 무슨 과자를 먹겠다고. 내가 팝콘 다 준비했단 말이지.'



2학년을 가르칠 때였던가, 국어 교과에 팝콘이라는 동시가 나와서 기계를 사서 튀겨 주곤 했다. 가족끼리 먹을 때는 깔끔하고 좋은데, 교실은 무조건 30명을 기준 삼아야 하는데 이걸 간과했던 나는 혼자 30인분의 팝콘을 튀기느라 땀이 범벅이 되곤 했다. 고생이 되긴 해도 몇 해 동안은 즐겁게 먹었는데 어느 해에는 땀범벅된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팝콘이 너무 적다며 불평을 하길래 구석에 처박아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자레인지 팝콘을 마트에서 발견한 순간 다시 팝콘 사랑이 불타올랐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다는 생각으로 코로나로 이런 것 해보지도 못했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이다. 야나두 (비교할 수 있어) (brunch.co.kr)



드디어 대망의 영화 보는 날이다. 과자를 얻지 못한 아이들이 이제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보고 싶다며 다시 나를 조르기 시작했지만 카리스마 있게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얘들아, 영화 볼 때 뭐가 필요할까?"

'팝콘이라고 말해. 그럼 선생님이 짠하고 보여줄 테니까.'

"예절이요."

'아, 맞다. 이걸 까먹고 있었군. 영화관 관람 예절 중요하지. 나보다 낫군.'

"맞아. 영화를 볼 때는 지켜야 할 관람 예절이 있어. 어떤 것이 있을까?"

"앞사람을 발로 차지 않아요."

"조용히 해야 해요."

"그렇지 역시 우리 반은 최고야. 지킬 수 있지? 그럼 또 어떤 것이 필요할까?"

"....?"

"바로...... 팝콘이 필요하지. 짜잔."

"와~~~~~~~~."

"선생님이 두 가지 맛을 준비했어. 너희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조용히 모둠별로 나눠줄 테니까 싸우지 말고 조용히 잘 먹어야 한다. 전자레인지 사용해야 해서 교실을 잠깐 비워야 하니까 진짜 조용히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반에는 비밀이다."

"네. 선생님 최고!"


때론 학급의 행사나 수업이 다른 반으로 흘러들어 가 그 반 선생님께 화살이 되는 경우가 있어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왜 우리 반은 00 안 하나요? 또는 00 하나요?" 등의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다양하듯, 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급 운영 방식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어느 때에는 다양성보다는 통일성이 우선되기도 한다. 그래서 비밀이 될 순 없겠지만 최대한 입단속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준 뒤 살금살금 나가 전자레인지에 팝콘을 넣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탁 튀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고소한 냄새가 연구실을 벗어나 복도까지 흘러나간다. 아이들이 목 빠질까 봐 급히 세 개를 가지고 교실로 향한다.


그런데 우리 반 문 앞에 교감선생님 딱 서 계신다. 손에 든 팝콘을 숨길 수도 없는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걱정이 된다.

'무슨 일이지? 영화 본다고 뭐라고 하시려나? 아니면 교실 잠깐 비운 것으로?'

다행히 급한 공문이 왔는데 교실 메신저에서 대답이 없어서 와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시름을 놓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욱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아, 제가 요즘 나이스도 불안정하고, 반에 학생선수가 많아서 그거 일처리도 하고, 학급에 일이 있어서 학부모님과 상담도 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죄송해요.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급한 마음에 불필요한 말까지 하고 나서야 교실에 입성했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다 말고 힐끔 보더니 팝콘 봉지에 또다시 열광이다.


"선생님, 저희 많이 주셔야 해요."

"다 똑같이 줄 거야."


갓 튀긴 팝콘의 따뜻함과 고소한 냄새가 이제는 교실을 가득 채운다. 평화롭다.


평화는 얼마 못 가 깨진다.

"선생님, 00 이가 혼자 이만큼이나 가져가요."

"너도 그랬잖아."

"얘들아, 사이좋게."




모둠마다 다 먹은 팝콘 봉지까지 가져와서 아이스크림 핥아먹듯 봉지를 핥아먹은 아이는 오늘 기분이 최고다.

"팝콘 처음 먹는 거 아니잖아. 이렇게까지 할 일이니?"

말대신 웃음으로 대답한다. 아이들은 더럽다며 피하는데 아이는 여전히 싱글벙글이다.


'그래, 행복했으면 됐다.'


아이들이 기뻐하니 나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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