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남편의 첫 요리 도전기
SNS에 #남편표요리 #남편1일1요리 #남편이해준요리 해시태그를 단 피드가 올라왔다. 친구의 남편이 요즘 들어 부쩍 요리에 취미를 붙이더니 매일 같이 요리를 한다고 했다. 프랑스 유학시절 즐겨 먹었던 요리들을 주로 하다 보니 스테이크나 이름도 낯선, 그럴싸한 요리 사진이 매일 공유됐다. 과연 미식가의 나라답군! 나는 댓글을 달았다.
“오오~ 대박! 완전 맛있어 보인다! 나는 언제나 저런 호사를 누려볼까? 부럽다 친구!’
친구의 SNS 너머로 프랑스 요리를 눈요기하던 나는 그 맛이 궁금해졌다. 가본 적 없는 프랑스의 요리가 아닌, 남편이 해주는 요리의 맛이란... 어떤 맛일까? 여간해서는 남편에게 뭘 바라는 내가 아닌데, 이번엔 옆구리라도 한번 찔러봐야겠다 싶어 넌지시 물었다.
“자기는 요리에 취미를 붙여볼 생각은 없나?”
“응. 없어. 왜?”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남편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너무나 남편다운 반응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님 밥을 먹었던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바로 나에게 바통 터치됐다. 살면서 딱히 요리할 기회도, 관심도 없던 남편. 그래 각자의 캐릭터대로 사는 거지. 어설픈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고, 알아서 설거지 정도는 책임져주는 남편에게 뭘 더 바라겠는가! 설거지 호사라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잠시나마 가졌던 로망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런데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옆구리라도 한번 찔러본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남편이 약속이 있던 나를 대신해서 점심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뭐 대충 배달시켜 먹지 않을까?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며칠 동안 레시피를 찾아보며 전에 없던 열의를 보였다. 없던 기대감에 펌프질이 시작됐다. 먹는 거 좋아하고, 기본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니 잘하겠지? 어쩌면 남편의 숨은 재능을 이제야 찾게 되는 건 아닐까? 나의 기대감이 주책없이 한껏 부풀어 올랐을 즈음, 남편은 역사적인 첫 번째 요리의 메뉴를 공개했다. 그것은 바로! 짜. 파. 게. 티!!!
주부인 나에게 짜장라면은 일종의 치트키다. 제아무리 날라리 주부라 할지라도 라면만큼은 피하고 싶은 게 주부의 마지막 자존심. 최대한 아끼고 아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짜장라면을 휘리릭 볶아내면 손쉽게 한 끼는 물론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뭐, 짜파게티? 내가 아끼고 아끼는 치트키를 써버리겠다고?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끼니 걱정 없이 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어 감지덕지였다.
시간을 꽉 채우고 눈누난나 집에 도착한 나를 반긴 건 뜻밖에도 정신없는 부엌이었다. 5분이면 족히 끝날 짜장라면을 붙들고 남편은 1시간째 조리... 아니 씨름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냥 짜장라면이 아니었다. 맛있는 짜장면을 대신할 짜파게티 짜장면이었다. 달달 볶은 달달한 양파가 듬뿍 들어간, 탱글탱글한 새우살이 톡톡 씹히는 그런 짜장면.
하지만 남편의 기대와 달리 요리는 첫 단계부터 난관이었다. 양파를 손질하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 기름에 달달 볶으라는데 알맞은 크기는 대체 얼만한 건지, 달달 볶는다는 건 얼마나 볶아야 하는 건지, 냉동고 구석에 있던 칵테일 새우를 찾긴 찾았는데 꽝꽝 언 새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덕션에서는 물이 펄펄 끓지, 약속한 점심시간은 점점 다가오지, 남편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먹는 건 쉬워도 직접 하려고 들면 은근 복잡하고 체계적인 게 요리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면 제일 먼저 못하게 되는 게 요리라 하지 않던가!
그 와중에도 남편은 레시피대로 꼼꼼히 따라 하느라 더 더뎠다. 나라면 짬으로 대충 넘겼을 텐데... 옆에서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그런 나를 의식해서일까? 아니면 도둑이 제 발 저린 탓이었을까? 잔뜩 어질러진 부엌을 둘러보던 남편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요리 하나 하는데 웬 그릇을 이렇게 많이 썼을까? 엉망이네...”
남편은 설거지를 하면서 나에게 잔소리를 하곤 했다. 자기라면 중간중간 정리하면서 깔끔하게 요리를 할 텐데, 그러면 이렇게 설거지거리가 많지 않을 거라나 뭐라나. 하긴 결벽증이 의심스러우리만큼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랬던 남편이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다니. 어때? 직접 해보니 쉽지 않지? 은근 통쾌했다. 나는 가진 자의 여유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세상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격려했다. 토닥토닥.
“괜찮아. 원래 다 그런 거야”
남편은 마지막으로 써니사이드업 달걀프라이를 부쳤다. 성격이 급한 나는 써니사이드업을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 강한 불로 빨리 하려다가 너무 익히거나, 약한 불로 천천히 기다리다 못해 노른자를 깨트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꾀부릴 여유조차 없던 남편은 시간과 공을 들여 써니사이드업은 부쳐냈다. 그렇게 완성된 달걀프라이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짜란~! 마침내 완성된 그림처럼 예쁜 달걀프라이 이불을 덮은 남편표 짜파게티, 이것은 분명 요리였다. 아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당신을 짜파게티 요리사로 임명합니다. 비록 시작은 우왕좌왕 좌충우돌이었지만 남편 생애의 첫 요리 도전기는 로맨틱 성공적이었다.
물론 설거지는 내가 했다. 요리의 흔적들로 거의 초토화된 부엌을 정리하면서 ‘암튼 요란하다 요란해.’ ‘아니 뭐 이런 그릇까지 꺼내 썼데?’ ‘그러니까 요리할 때 중간중간 정리하면서 하면 깔끔하고 좀 좋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잔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설거지하는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으로 퉁치고 잔소리는 안 하는 걸로! 대신 #남편표요리 해시태그를 단 피드를 SNS에 올렸다.
“덕분에 한 끼 맛있게 잘 먹었어. 다음에도 부탁해~”
며칠 전 친구의 SNS에 내가 남겼던 댓글에 친구가 답글을 달았다.오오~ 대박! 완전 맛있어 보인다! 나는 언제나 저런 호사를 누려볼까? 부럽다 친구!’맛이 있다기보단 정성이고 추억의 맛이지 ㅎㅎ’
그래. 생각해 보니 음식을 꼭 맛으로만 먹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먹던 그때의 상황, 그때의 우리, 그때의 이야기가 있기에 음식은 추억이 된다. 추억이 된 음식은 최고의 요리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맛으로 기억된다. 짜장라면 하나로 행복했던 우리들의 점심시간, 그러고 보니 우리가 먹은 건 한 장의 추억이 아닌 한 그릇의 추억이었구나... 앞으로 아이들은 짜장면을 볼 때마다 아빠표 짜장면(으로 승격)을 떠올릴 것이고, 나는 남편의 배려를 떠올리며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리라.
나는 남편이 어떤 요리를 하든 뭐든 받아줄 준비가 됐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것은 분명 요리를 넘어 추억이 될 테니까. 추억은 언제나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