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은 대물림된다
감수성이 남달랐던 소녀시절의 엄마는 ‘子’ 자 돌림인 자신의 이름보다 ‘은미’이길 원했다. ‘은미’가 살던 동네에 피아노가 있는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들리는 피아노 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만 7남매 중 셋째인 ‘은미’에겐 기회가 없었다. 그때부터 피아노는 은미의 로망이 되었다. 그래서 딸이 태어나면 꼭 피아노를 가르치겠노라 결심했다.
그렇게 ‘은미’의 첫 딸로 태어난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지금이야 남녀 구분 없이 피아노를 배우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는 한 반에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로망 덕분에 그 절반도 안 되는 아이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처음 몇 달은 정말 재밌게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매일 ‘닭장’같이 좁은 방에 갇혀 피아노를 친다는 게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체르니 30번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하고 끝내자.”
그렇게 나는 꼬박 3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고, 체르니 30번을 떼자마자 미련 없이 ‘닭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피아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첫째 딸이 여섯 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남편을 따라 결혼식장에 다녀온 딸이 ‘지붕 달린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진짜 지붕을 떠 바치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살 수는 없고, 대신 디지털 피아노 한 대를 집에 들였다. 그런데 정작 딸보다 내가 더 설레고 좋았다. 그때부터 나에겐 야무진 꿈 하나가 생겼다.
“나의 로망인 녹턴을 연주해 보리라!”
하지만 30여 년 만에 다시 치는 피아노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악보가 한눈에 읽히지 않아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음을 찾아야 했고, 뇌에서 인식한 음을 손가락에게 지시해 건반을 누르는 전 과정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머리도, 손가락도 굳어있었다. <녹턴> 한 곡을 연주하는데 20분 이상이 걸렸으니, 말 다 했다. 하긴... ‘닭장’ 탈출 이후 피아노 건반 한 번 눌러보지 않았던 내가 다짜고짜 ‘녹턴’을 쳐보겠다고 덤볐으니, 무리도 이런 무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매일 밤, 애들을 재우고 피아노를 뚱땅거렸다. 헤드폰을 끼고 나만의 세상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친 듯이 피아노를 쳤다. 다음 날이면 손가락과 손목으로 연결된 근육이 땅겨 아플 정도였다. 그래도 실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몸으로 익힌 것은 절대 까먹지 않는다던데 난 왜 이럴까... 괜스레 야속한 마음도 들고, 조금씩 지쳐갈 무렵 기분 전환 삼아 제일 만만하다고 생각한 <엘리제를 위하여>를 쳐봤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아...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이쯤 되면 피아노 치기를 포기했을 법도 한데 어쩐 일인지 그럴수록 <녹턴>에 대한 나의 갈망이 더 커져갔다.
“혹시 나한테 프러포즈하려고 연습하는 거야?”
매일 밤마다 등을 보인채 피아노와 씨름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꿋꿋하게 매일 피아노를 쳐댔다. 어차피 헤드폰으로 나만 듣는다 생각하니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없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을까? 느리지만 그래도 제법 구색을 갖춘 <녹턴>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시 <엘리제를 위하며>를 쳐봤다. 그런데!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였다. 따로 연습 한 번 안 한 곡인데 저절로 쳐지다니! 나는 그게 너무나 신기했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어려운 일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작은 일쯤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런 게 바로 내공이라는 건가?”
꾸준함에 장사 없단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 인생을 반성했다.
생각해 보니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도 <엘리제를 위하여>를 끝까지 쳐본 적이 없었다. 앞부분만 배웠고 어느 정도 친다 싶으면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왜 그랬을까? 그냥 그렇게 대충 치는 척만 했다. 인생 역시 그렇게 살아왔구나... 싶었다. 피아노 건반을 대충 눌러가며 얼핏 보면 꽤 그럴싸한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주자인 나는 안다, 그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큰 의지 없이 방송작가가 됐고, 다행히 가진 재능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 그럭저럭 일을 해냈다. 운 좋게 이름을 걸쳐놨던 작품이 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땐 그게 독인 줄 몰랐다.
한 7년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 처음 치는 곡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끝까지 쳐본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꾸준히 치다 보면 속도가 붙는 걸 스스로 느낀다.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은 참 신기하고 감탄스럽다. 제법 감정을 실어 연주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인생과도 닮았다. 처음은 서투르지만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넘겨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일이 잦다. 임계점까지 다다르는 방법은 꾸준함 밖에 없다는 것을 피아노 치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의 로망이 나의 로망이 됐고 이런 나를 보고 자란 두 딸은 또 어떤 로망을 가지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