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게 맞는 불안처방전, 독서모임

배려와 존중이 있는 독서모임은 치료

by 박앎

독서모임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지 거의 1년이 넘었다. 퇴출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참여를 안 했으니 이쯤이면 양심적으로라도 참여해야 한다. 아니면 내 손으로 나가기를 누르는 선택을 하던지...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해 미리 회비를 송금했고 여수에서 전주로 움직였다.


조금 남은 페이지를 다 읽고 생각도 정리할 겸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모임이 있는 카페는 생각보다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고 1층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가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반겨주었다. 그 냄새가 어찌나 진한지 코를 찌르는 게 거슬렸지만 오랜만에 참여하는 모임이라 긴장되고 두근거렸다. 냄새 따위는 금방 잊혔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설렘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한다.


최근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낯선 여수에서 살고 있으니 아는 사람은 동거인뿐, 자주 가는 독립서점 직원과 가끔 이야기 나누지만 그 외에는 타인과의 접촉이 자연스레 뜸해졌다. 그나마 독서모임이라도 나가면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지만 그러질 않았으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신경 쓰이고 긴장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우리 팀은 6명이 둘러앉았다. 낯익은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이 시작된다. 시작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긴장 탓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땀이 나는 것을 인지하면 더 긴장된다. 심장이 팔딱거리고 땀이 폭발하듯 솟아난다. 자신감이 솟아나야 하는데 땀이 솟아난다. 곤욕이다. 땀을 흘리는 내가 부끄럽다. 하필이면 옷도 두껍게 입었다.



‘집에 가고 싶다.’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올까?’

도통 집중이 안 되는 상태로 초조함을 숨기며 깊은숨을 들이켠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있다. 온몸의 근육을 조이는 긴장이 완화되고 편안해졌다. 불편했던 의자도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야기가 잘 들리고 대화에 물 흐르듯이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그림책과 소설책을, 그리고 자기 계발서를 이야기하고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점차 책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왔는데 더 행복해졌어요.”

“난임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걱정을 내려놓고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게를 더 확장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돈을 더 많이 벌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요.”

“요즘 아이들 정신건강에 디지털 매체가 악영향을 미치는 게 걱정이에요.”


책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그렇게 서로 각자의 삶의 이야기로 모임을 채워간다. 한참을 집중하다 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1시간이 반 토막 난 것처럼 흘러 있었다. 모임이 끝으로 와닿았을 때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차례가 왔다.


이번 모임에서는 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소개했다.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감각으로 세심하고 깊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특히 상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잘 느끼는 능력이 있었다. 작가의 삶 속에서 스쳐간 상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때로는 작가에게 본의 아니게 또는 일부러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은 채워져 있다.


작가는 상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때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과 그 상처를 바라보며 성장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잘 위로한다는 것을, 상처가 치유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 숨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과 너무 뜸했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서 전하지 못했던 위로를, 전하지 못했던 말을 작가의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나도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었다.


책에 대한 소개가 이뤄지는 동안 모두의 눈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느낀다. 처음처럼 땀이 솟아난다. 자신감이 솟아나야 하는데 땀이 솟아난다. 땀 때문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긴장하는 모습을 또 보여주게 생겼으니 마음은 숨기 바쁘다.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약을 먹지 않고 지내고 있다. 진땀을 흘릴 게 빤하면서 약을 먹지 않고 이 자리에 온 자신을 탓하지만 근본적으로 치료의 전부가 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치유해야 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는 평가받는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실수해도 괜찮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경험이 필요하다.


독서모임은 책을 함께 읽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과 따듯하게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는 자리가 된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약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내 불안한 마음에 처방전으로 독서모임이 필요하다.

keyword
이전 11화당신은 건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