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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16. 2024

오늘 : 0416

2024. 4. 16.

1.

새벽에 눈이 떠졌다. 어제는 풍랑주의보로 종일 쉬었다. 밀린 잠보충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새벽 4시쯤 일어난 것이다. 쌀 두 컵, 현미 한 컵으로 아침밥을 짓고, 냉장고를 열어 어묵탕 재료를 꺼내 어묵탕을 끓이고, 냉동고를 열어 냉동 동그랑땡을 꺼내 동그랑땡을 붙였다. 오늘도 페리호 20척을 맞이해야 하기에, 점심을 사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김치, 구운 김, 동그랑땡, 현미밥이면 충분히 한 끼가 될 수 있다. 화장실을 들러 볼일을 보고, 모았던 쓰레기를 분리하여 묶어 클린하우스에 가서 분리배출했다.


2.

그렇게 다 했는데도 새벽 6시도 채 안 되었다. 커피를 한 잔 타서 마당으로 들고나갔다. 인기척을 들은 감자와 카레가 나와 마당에서 그루밍을 한다. 어느새 이 아이들은 내 식구가 되었다. 고양이 밥을 채워주고 물을 갈아준다. 얘들은 참치캔을 따 달라고 난리지만 매일 캔을 먹일 수는 없다. 모른 척했다.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본다. 동이 트고 있다. 오늘은 4월 16일이다.


3.

10년 전 4월 16일에는 고양시 마두동에 있는 자유청소년도서관에 있었다. 아침 근무를 마치고 만두가게에 들러 만둣국을 시켜 먹었다. 그때 TV를 통해서 세월호를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세월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데, 가장 먼저 구출해야 할 생명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결국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아이들의 대부분을 구출하지 못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곳에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나라는 없었다. 나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나라 잃은 난민이 되었다.


4.

1년 넘게 눈물을 달고 살았다. 툭하면 울음이 터졌다. 거리를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울음이 터졌다. 마두동에 있는 편의점에서 울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아있던 문성근 씨가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찮지 않았다. 붉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고 그 역시 슬픔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5.

10년이 지났는데도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 사이에 정권이 3번이나 바뀌었다. 정권이 3번 바뀌는 동안에도 진상규명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종류의 사건이 이태원에서 발생했다. 그곳에도 생명을 지키는 치안이 작동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동료시민만이 그들을 구출하고 지키고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과 이태원 유가족은 지금도 차가운 거리에서 호소하고 있다.


6.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끝나고 야권이 압승하였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까? 세월호의 아픔과 이태원의 아픔, 채상병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해안가에 있는 바람개비 중에서 노란색을 골라 사진을 찍고,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0416, 하늘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오늘이 세월호 10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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