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Apr 25. 2024

오늘 : 한라산을 보며 출근

2024. 4. 25.

1.

새벽에 감자가 걱정이 되어 일찍 눈이 떠졌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나가 감자를 기다렸다. 새끼들을 데려올 공간을 마련했지만, 텅 비어 있었다. 감자가 숯검댕이가 되어 등장했다. 밤새도록 새끼들과 지냈을 게 분명했다. 급히 참치캔을 따고 사료랑 섞어 감자 앞에 들이밀었다. 감자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가와 말없이 아침을 먹었다. 얼마 먹지도 않고 밥그릇을 떠나 마당에서 더러워진 몸을 혀로 핥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은 사료는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와 먹어 치웠다.

나는 감자에게 "어제는 미안했어.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창고에 공간을 마련했으니 새끼들을 데려고 와라." 부탁했지만, 감자는 20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집으로 새끼를 데려오지는 않을 것 같다. 별 수 없다. 감자라도 배불리 먹이는 수밖에. 안타깝지만 그것을 현실이라 인정하고 출근하자.


2.

가파도에 있다고 늘상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구름이 많으면 한라산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날씨가 유난히 맑은 날, 한라산은 아름답게 등장한다. 오늘 해안가 도로를 따라 출근하는 길에 한라산을 보았다.

아침에 어두웠던 마음이 한라산을 보니 환해진다. 마치 한라산이 "괜찮아. 너는 너의 일을, 감자는 감자의 일을, 나무는 나무의 일을, 파도는 파도의 일을, 바위는 바위의 일을 하면 돼."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라산에게 인사를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3.

이제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막바지이다. 이번 주말이면 축제가 끝이다. 어떻게 힘든 한 달을 버티나 걱정했었는데, 나름 즐겁게 지낸 것 같다. 힘든 사람들끼리 자주 모여 식사도 하고 술을 마시며 서로를 위안하고 격려했다. 그러는 사이가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갔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간다"라고 되뇌었는데, 효과가 있었다. 오늘만 근무하면 내일은 쉰다. 그 생각에 오늘이 힘들지 않다.


4.

틈틈이 독서를 하고, 원고를 쓴다.  마틴 푸크너가 쓴 컬처 : 문화로 쓴 세계사와 세라 페이턴이 쓴 공명하는 자아를 섞어가며 읽고 있다. 바쁠 때는 전자를 한가할 때는 후자를 읽는다. 후자는 아내의 추천으로 읽고 있는 책인데, 조용히 읽어야 도움이 된다. 그에 비해 전자는 종횡무진으로 세계사를 소개하는 책이라 바쁘더라도 즐겁게 읽힌다. 다 읽으면 독후감을 올릴 생각이다.

5.

자, 오늘도 으라차차, 친절하게 다정하게 지내자.

이전 09화 오늘 : 도시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