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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Oct 12. 2024

2024 칼럼쓰기 8 : 안녕, 인생아

<고양신문>(인터넷판, 2024. 10. 9.)

가을입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가파도에서 이 더위를 먹고 피해 다니느라 한참을 고생했습니다. 선선한 가을에 일 년 살던 달팽이집에서 나와 선착장 근처에 있는 낮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낮지만 에어컨 있고, 보일러 되고, 세탁기 돌고, 실내에 양변기가 있는 번듯한 집입니다. 도시에 살 때는 의식하지 못하고 누렸던 것들이, 여기서는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더 편리한 곳으로 이동하고, 더 편안한 삶을 기대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올해 무사히 생존했습니다.


저는 살아남았지만 올여름에 다른 세상으로 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해녀분들 두 분과 매표소에서 청소를 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매표소에서 늘 보았던 분들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가파도에 사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자연에 가까이 사니 죽음도 가까이 있나 봅니다. 가파도는 섬 중에 섬이라, 병원이 없습니다. 일찍 배가 끊기면 육지로 이동할 수단은 응급헬기뿐입니다. 신고하고 접수하고 이동하는 시간에 골든 타임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해녀분이 돌아가시면, 해녀들은 아무리 좋은 시기라도 보름 정도 물질을 멈춥니다. 돌아가신 해녀분에 대한 일종의 추모기간입니다. 해녀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물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체력이 약해지면 깊은 바다로 들어가지 않고, 해안 가까이에서 소라, 보말, 성게를 땁니다. 수확이 많은 젊은 해녀들은 이분들에게 자신이 딴 것 중 좋은 것 일부를 건네줍니다. 해녀 공동체의 전통입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보살피고, 지원하며 살지 않으면 험난한 바다 물질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물질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좋은 것 사고 맛난 것 먹고파서가 아닙니다. 평생을 의지하고 살았던 바다에 가면 일은 힘들지만 마음이 편하고. 수확이 생겨 현금이라도 손에 쥐면 자식들에게 맛난 것 좋은 것 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사랑이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느닷없는 죽음으로 사랑은 멈춰지고 침묵이 흐릅니다. 살아온 생애를 알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눈을 열어 물을 흘립니다.


매표소 청소를 하시던 할머니는 강원도에서 군인 남편을 만나 가파도로 이사 왔습니다. 외지 사람이 섬에서 인정을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이 무서워 바다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미역 따고 톳 거두며 살았습니다. 외로운 섬살이 남편 하나만 의지하고 밤낮없이 일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쉬실 만도 하신데 조금이라도 벌이가 생기면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몸을 썼습니다. 슬하에 자식 하나 있었으나 젊어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자식을 가슴에 묻고 다시 일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청소하실 때마다 가파도에 혼자 와서 힘들지 않냐며 내 걱정을 해주셨고, 김치가 떨어지지 않았냐며 묵은 김치를 한 통 주시기도 했습니다. 나는 정작 할머니가 더 걱정인데, 이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가파도에 와서 고생한다며 더위 먹지 않게 잘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니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낮에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늦게 발견됐고, 늦게 이송됐고, 손 쓸 틈 없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나의 주변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 빈 마음 슬픔으로 채워야 하는데, 노동으로 채웁니다. 인생, 참 쓸쓸합니다. 고인의 평안을 빕니다. 그곳에서는 일하지 말고 쉬세요.   


안녕, 인생아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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