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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Nov 18. 2024

2024년 칼럼쓰기 9 : 다시 시작하며

<고양신문 인터넷판> (2024, 11, 18일자)

11월입니다. 가파도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할 일이 제법 많습니다. 우선, 이사를 해야 합니다. 하동에 있는 달팽이 집에서 상동에 있는 난쟁이 집으로 이사합니다. 새로 이사할 집은 이전 집보다는 크지만 방의 높이는 낮아졌습니다. 고개를 들면 천장과 만납니다. 다행인 것은 커다란 마루가 있어 생활이 쾌적하다는 것입니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일명 바다뷰 집입니다. 아, 에어컨도 있습니다. 냉난방 기능을 갖추고 있어, 아주 유용합니다. 냉장고도 커졌고, 세탁기도 있습니다. 화장실도 실내에 있습니다. 이삿짐을 사부작사부작 챙겨서 찔끔찔금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깔리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문제만 해결되면, 최종 이삿짐만 남았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단독주택이라 손님을 맞이할 수도 있고, 매표소까지도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집이 팔리면 나간다는 조건으로 사는 것이라, 불안정한 조건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편하게 먹으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집을 이사해야 하니, 그동안 같이 살았던 고양이들과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집니다. 감자, 카레, 미니, 무, 당근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애틋합니다. 마당 고양이들을 데려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세 들어 사는 집에 고양이들을 들이는 것이 마땅치 않고,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이라 낯선 환경에서 잘 지낼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바닷가 고양이들은 야생성이 높아 그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그래서 내린 최종 결론은 두고 가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주민분이 계시다는 겁니다. 대신 나는 고양이 급식소 한 개를 가져가려 합니다. 새로 이사한 집에 급식소를 설치하고 새롭게 찾아오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합니다. 새 장소니 새 인연이 맺어지겠지요.     


그리고 선사와 재계약도 맺어야 합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한 것이라, 새로 계약서를 써야 합니다. 1년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시급 인상도 요구해야겠습니다. 처음에 일을 할 때에는 쉬는 날도 첫 근무를 하고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전하게 쉬는 날은 없었던 셈입니다. 그야말로 노예 계약(?)이었지요. 내가 불합리하게 맺었던 계약이 관행이 되면, 내가 그만둔 후에 올 후임자에게도 안 좋은 계약 조건이 될 것입니다. 시급노동이라 워낙 임금도 적은데, 풍랑이 일고 주의보가 떨어지면 강제로 쉬어야 해서 안정적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일 것입니다. 선사에서 일하는 매표원들이 모두 겪고 있는 문제이니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중에 차분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가파도에서 1년을 지내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책도 출간되었고, 출간을 기다리는 책도 있습니다. 가파도에서 새로 맺은 인연도 있고, 본도(제주도)에서 만나 맺어진 인연도 있습니다. 고양이도서관 관련 운동가들도 만났고, 길냥이를 돌보는 활동가들도 만났습니다. 제주도에 내려와 정 붙이고 사는 예술가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송악도서관의 사서분에게는 가파도 터미널 도서관을 설립하기 위해 책 기증을 요청했고, 제주도의 작은 책방들을 방문하여 가파도의 책방 설립에 대하여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1년 동안 조용히 적응하며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1년은 뭔가 모색하고 작게라도 실행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신중하게 그리고 하루하루를 즐기며 다시 일 년을 시작하려 합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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