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Nov 19. 2024

책 : 한강

2024. 11. 19.

그때 알았습니다. 이 프로젝스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 프로젝트를 위해 글을 쓰려면 시간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먼저 나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필멸하는 인간의 짧디짧은 수명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내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글을 써왔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언어'라는 나의 불충분하고 때로 불가능한 도구가, 결국은 그것을 읽을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쓴 것을 읽는 사람들이 거기 아직 살아남아 있으리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인간의 역사는 아직 사라져 버린 환영이 되지 않았고 이 지구는 아직 거대한 무덤이나 폐허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근거가 불충분한 희망을 믿어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꾸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작가들이 앞으로의 백 년 동안 죽어가고 새로 태어나며 마치 불씨를 나르듯 이 일을 계속해낼 것이라는 흔들리는 전제를 믿어야 합니다. 종이책의 운명이 백 년 뒤에 세계까지 살아남아 다다를 것이라는 위태로운 가능성까지도.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빛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뎌야만 하는 순간을 기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마 이 프로젝트는 백 년 동안의 긴 기도에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이 순간 나는 느끼고 있습니다. (340~341)

- <백 년 동안의 기도 -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중에서 



1.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상을 수상했을 때, 그리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한국문단계의 지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가 상상했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은 적어도 한강 이전의 작가들이었다. 조정래, 황석영, 박경리, 조세희, 현기영과 동시대의 작가들. 그들은 한 시대의 진단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이었다. 이 시대 작가 중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했고, 그리고 몇몇은 살아남아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한강보다는 앞선 세대와 친연성이 많았고, 그들의 책을 읽으며 젊은 시대를 꿈꾸고 나의 세상을 벼렸다. 이들 거장의 시대가 가고 있다. 아울러 그들보다 한 세대 뒤인 나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이 저묾이 서럽지 않다. 누구나 한 시대의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작품활동을 했고, 자신을 밟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을 축복해야 하기에. 이제 나는 나보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잘 읽지 않는다. 읽는다고 해도 그리 큰 감흥을 얻지 못한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한강을 읽으면서 새로운 조짐을 읽었고 이를 환영하는 쪽이었다. 이번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갑작스러운 한강 독서 열풍이 불었고, 서점계의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현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으리라. 나는 이미 한강의 대표적 소설을 읽었기에, 이 열풍에 가담하지 않아도 되었고, 한강을 둘러싼 한국의 좌우반응을 무심히 관찰하는 방외인이 되었다.


2.

그럼에도 한강을 기념하기 위한 책 한 권을 사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강-디 에센셜>을 구입했다. 장편소설 한 편. 단편소설 두 편. 시 다섯 편. 산문 여덟 편으로 구성된 책이다. 물론 이 책은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하여 급조한 책이 아니라, 수상하기 전에 한강 스스스로 선택한 선집이다. 그게 마음에 든다.


책을 읽는 순서는 내 마음대로다. 우선 수필을 찾아 읽는다. 한강의 어린 시절과 가족들이 떠오른다. 삶이 녹아 글이 된다면 한강의 글에는 그의 삶이 녹아있겠지. 그 삶의 정수를 본 기분이다. 수필을 읽으며 근육을 풀었으니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는다. 장편 <희랍어 시간>을 읽는다. 시력을 잃어가는 희랍어 선생과 말을 읽어가는 희랍어 학생의 이야기이다. 이 장편 속에 한강의 '한강스러움'이 모두 있는 것 같아 반갑다. (하지만 한강의 감수성과 압축적이고 은유적 표현은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러면 어떤가?) 장편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인용한다.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135쪽) 

- <희랍어 사전> 중


단편을 읽고, 시로 넘어간다. 첫 시가 눈길을 끈다.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하여 익숙한 시지만, 다시 읽어도 한강답다. 사라지는 것을 쓸쓸하게 관조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것을 느끼려는 한강의 작품세계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밤에서

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3.

한 2주간 야금야금 읽어간 <한강>을 다 읽었다. 내가 쓸 수 없는 글을 쓰는 작가. 그의 문체가 부럽지는 않지만, 그의 섬세한 시선은 부럽다. 그리고 그의 문체가 그의 시선에서 온 것이라 짐작한다. 나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나의 시선은 무엇을 보는가? 나에게 문체는 있는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책을 다 읽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자. 저기 표를 바꾸러 오는 손님이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