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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Nov 24. 2024

오늘 : 파도야, 밥 먹자

2024. 11. 24.

1.

매표소에 잘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가파도가 고양이 중성화수술을 할 때에는 용케도 피해 다니더니, 의료진들이 가버리자 다시 나타났다. 수컷 고양이다. 이장님 집 고양이라 하여, 마을분들은 장난으로 "상준아~~!"하고 고양이를 부른다. 사람 손때를 오래도록 탔는지 도망하지도 않고 사람들 주변을 서성이며 재롱을 부린다. 매표소를 청소하는 일찌누나가 화장실 근처에 종이박스로 임시거처를 마련해 주고 먹이를 주자, 그곳을 제집 드나들듯이 왔다 갔다 하며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한다.

이장님 이름으로 고양이를 부를 수 없어, 나는 이 잘 생긴 수고양이에게 '파도'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가파도 매표소 고양이라는 뜻으로 '파도'라 지었다. 아무래도 이 고양이가 매표소의 마스코트가 될 것 같다. 오늘도 매표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관광객들 사이를 오고 가다가 방파제 끝에 가서 멀리 파도롤 바라보고 있다.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정이다.

2.

그 모습이 하도 근사하여 나도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매표소에 있는 고양이 캔 하나를 가져다가 따줬더니 캔에 고개를 처박고 맛있게 먹는다. '그렇지, 고양이를 꾀는 방법 중 참치캔이 최고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파도와 친해지려고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소개를 한다. "난 매표소 삼촌이야. 배고프면 나를 찾으면 돼. 여기는 차가 많이 돌아다니니 조심하고." 파도의 목에는 가느다란 끈이 매달려 있다. 제주도를 홍보하는 끈이다. 떼어줄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한다. 멀리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맺어간다.

3.

오늘은 일요일. 내일부터 풍랑주의보가 일주일간 내리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날씨가 멀쩡하다. 파도도 잔잔하고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도 맑다. 멀리 한라산의 정상도 또렷이 보인다. 관광객들도 편안한 표정으로 가파도를 즐기고 있다. 마을 분들은 풍랑을 대비하여 식량을 마련하려고 나가시는 분이 많다. 일주일 동안 갇혀있으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이고,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줌수업 때 사용할 교안을 준비한다. 두 달간 불교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원영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로 기초를 닦고, 오사와 마사치와 하시즈메 다이사부로가 대담한 <유쾌한 불교>로 영역을 확장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미 꼼꼼히 읽었지만, 다시 요약하고 정리하는 노트를 작성해서 배포하려고 한다. 글씨를 꼭꼭 눌러쓰듯이, 자판을 천천히 음미하며 두드린다. 평온한 시간이다.


4.

가파도의 11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작업 배경음으로 조용필의 신곡을 틀어놓는다. 그의 성실함과 예술성에 감탄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가는 삶을 살면 된다. 양에 욕심내지 않고, 질을 생각하면서. 삶을 조탁하면 된다. 아침에 타 놓은 커피가 다 식었다. 식은 커피도 맛있다. 인생도 그러하리라.

오늘은 날씨가 좋아 해녀들도 물질을 한다. 이번달 마지막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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