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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Sep 20. 2022

장자를 달린다 10 : 언박싱의 역사

- 10편 <거협(胠篋)>

세상에서 소위 지혜롭다는 자 중에 [世俗之所謂知者]

큰 도둑을 위해서 재물을 쌓아 두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 [有不爲大盜積者乎]

세상에서 소위 거룩하다는 자 중에 [所謂聖者] 

큰 도둑을 위해서 문지기 노릇을 하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 [有不爲大盜守者乎]   

  

선물을 받았거나 택배로 받은 물건을 열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안에 무엇이 들었나 사뭇 궁금하기도 하고, 주문한 물건이 제대로 왔나 확인도 해보는 이른바 ‘언박싱’의 재미. 장자 외편의 3번째 제목이 <거협(胠篋)>인데, 풀이하면 ‘상자를 열다’이고, 요즘 말로 언박싱입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를 여는 도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끈으로 꼭 묶고 자물쇠와 고리를 단단히 거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세상의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적이 오면 궤를 짊어지고, 상자를 둘러메고, 주머니째 들고 달아나면서, 오직 끈과 자물쇠와 고리가 약하지 않을까만을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바로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놓은 꼴이 되지 않겠는가?”


읽다 보니 선물상자라기보다는 보물상자이고, 보물상자이기에 상자가 열리거나 도둑질당하지 않도록 굳건하게 잠근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난당하지 않기 위해 잠가놓은 금고의 이미지가 더 강하네요. 그런데 아뿔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아무리 단단히 잠그고 묶어놓은 보물상자라 하더라도, 상자째 들고튀는 대범한 도둑놈이 생기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들고튀는 놈은 오히려 단단히 잠가놓은 상자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재주는 누가 넘고 돈은 누가 챙긴다고, 장자가 보기에는 인류문명사의 온갖 좋은 제도와 법률은 결국 도둑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고스란히 인간을 죽이고 억압하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빌어 독일의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치즘을 확산하면서 전횡을 일삼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심지어 도둑놈들도 노골적으로 ‘나 도둑놈이다’라 말하지 않고 세상에서 칭송받는 말로 자신을 포장할 줄 압니다. 중국 최고의 도둑놈 도척의 부하가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당연히 있지. 방안에 어떤 물건이 감추어져 있는지 아는 것이 성(聖)이요, 가장 앞서서 침입하는 것은 용(勇)이요, 훔쳐 나올 때 가장 뒤에 서는 것이 의(義)요, 도둑질의 성패를 아는 것이 지(知)요, 훔친 것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 바로 인(仁)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정의사회구현’을 외쳤던 집권자가 부정의한 일을 가장 큰 규모로 가장 많이 자행했고, ‘공정사회’를 외치던 집권자는 자신과 주변에게는 공정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어와 삶이 서로를 배신하고,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하고자 만들었던 제도와 법률이 더욱 사람들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도 이제는 아주 흔해졌습니다. 게다가 그놈의 제도와 법률이란 것도 있는 사람, 높은 사람에게는 적용이 안 되고 없는 사람, 낮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편파적인 도구가 되어 버렸으니, “유전무죄, 무전유죄” 민중의 삶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리하여 장자는 차라리 도둑질당할 만한 것들을 모두 없애자고 과격하게 제안합니다.“성인을 없애고 지혜를 버리고, 쓸데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온갖 이기들을 없애고, 잘난 척하는 지식인들의 입을 틀어막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눈이 밝아져 스스로 보고, 귀가 밝아져 스스로 듣고, 지혜가 스스로 생겨 잘못된 것에 속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갖지 않게 된다고 말하지요. 장자의 주장처럼 온갖 것을 없앤다고 사람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대부분의 법과 제도, 사상, 종교, 정치, 예술, 철학은 지배자(성인이 되었든, 도둑놈이 되었든)의 이익을 관철하는 이기(利器)였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소수에게만 이기였다면 다수에게는 흉기(凶器) 임에 분명합니다. 소수가 행복하기 위해 다수가 불행해지는 사회는 권장할 만한 사회가 아닙니다. 양극화 현상은 오늘날에 더욱 극심해졌을 뿐, 역사과정 내내 관철되어온 일반법칙처럼 여겨졌습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면, 나라님의 부유는 추문(醜聞)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나라님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모든 것에 침을 뱉고, 그들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온갖 것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생생한 민중의 삶을 되돌리려 했던 장자의 고심을 쉽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보물을 귀하기에 보물 담을 상자를 마련하고, 거기에 온갖 잠금장치를 만들어 장착하는 것이 지혜인 줄 알았는데, 정작 도둑놈이 상자째 훔쳐가 보물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 보며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지혜는 보물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고. 보물이 없다면, 상자도 필요 없고, 상자가 없다면 자물쇠도 필요 없다고. 보물이 없다면 지킴도 훔침도 불가능합니다. 언박싱의 즐거움은 사라지겠지만, 도난당할 염려도 사라집니다. 성인도 사라지고, 도둑도 사라집니다. 소유의 멈춤이 주는 평안(平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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