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Oct 05. 2022

장자를 달린다 11 : 지배 중독에서 벗어나기

- 11편 <재유(在宥)>

하늘과 땅이 맡은 바가 있고 [天地有官]

음과 양이 간직한 바가 있다 [陰陽有藏]

너는 몸을 삼가 지키라 [愼守汝身]

그러면 만물도 또한 너와 함께 피어날 것이다 [物將自壯]    

      

뭔가를 하려는 게 힘든가요? 아니면 뭔가를 안 하려는 게 힘든가요?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라면 뭔가를 하려는 게 힘들 수 있습니다. 또 뭔가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마약 중독 등 결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중독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중독은 의식 단계를 넘어서 무의식 단계까지 지배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지요. 게다가 중독된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생각하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중독의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신이 중독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결코 벗어나고 싶어 하지도 않겠지요.


지배 중독은 어떻습니까? 남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일수록 지배 중독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사하는 지배력을 선의로 포장하려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말도 사실 지배 중독적 언어입니다. 인류 사회는 오랫동안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속에서 사회를 운영해왔습니다. 그래서 지배하는 사람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배를 받는 사람들도 자신이 지배받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요. 그리하여 지배 중독은 더욱 만성적으로 사회 곳곳에 침투합니다.

남들보다 조금만 재력이나 권력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지배력을 남에게 행사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오랫동안 지배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노자나 장자의 무위(無爲)는 바로 지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배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진정으로 세상을 얻고자 한다면 지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노자 <도덕경> 48장을 읽어보겠습니다. “배움을 얻으려면 날마다 쌓아야 하고, 도를 얻으려면 날마다 덜어야 합니다. 덜고 또 덜어 무위(無爲)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세상을 얻고자 하는 자는 항상 일을 만들지 않습니다. 일을 만들면 세상을 얻기에 부족해지지요.(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矣 故取天下者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시로 쓴 노자 48장을 이야기로 만들면 장자 외편의 4번째 편인 <재유(在宥)>가 됩니다. ‘재유(在宥)’라는 제목은 첫 번째 문장에 나오는 동사를 따라 지어졌습니다.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천하를 있는 그대로 두라는 말은 들었지만, 천하를 다스리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聞在宥天下 不聞治天下也)” 이 문장에서 보이듯 ‘재유(在宥)’는 있는 그대로 두라는 말이고, ‘치(治)’는 다스린다는 뜻이니,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과 연결시키자면, 재유는 무위(無爲)이고, 치는 유위(有爲)인 셈입니다.

<재유>편은 인위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그냥 두라고 말합니다. 도(道)가 사라지고 덕(德)이 없어진 것은 억지로 세상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요. 세상을 억지로 바꾸려는 노력은 그것이 선한 의도이든 악한 의도이든 결국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진술은 불의한 세상을 향해 저항의 몸짓을 하는 민중의 항거를 무력화시키는 반동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본래 노자나 장자의 의도에서 벗어난 접근법입니다. 노자의 시나 장자의 이야기는 모두 이 통치자들의 전횡을 막기 위한 경고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민중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에게 민중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괜히 지배한답시고 민중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지배 중독에서 벗어나야지만 세상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고 장자는 충고합니다. 남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나요? 상대방을 잘 되게 해 주겠다면 그를 지배하려고 하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병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지배하려 하지 고 그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보면 어떨까요?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자신의 바람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바라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돕되 지배하지 않기, 바라보되 참견하지 않기, 지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입니다.


하늘과 땅은 하늘과 땅의 일을 하고, 음과 양은 음과 양의 일을 하듯이, 자신은 자신의 일을 하면 그뿐입니다. 서로가 지배가 아닌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될 때 만물은 자신의 모습을 활짝 피울 것입니다. 만화방창(萬化方暢), 온갖 존재가 자신의 모습대로 따뜻한 기운 아래 생명력을 뿜어내는 세상, 이것이 노자와 장자가 꿈꾼 세상입니다.

이전 11화 장자를 달린다 10 : 언박싱의 역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