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정
깊은 잠에 깨어나 거실 커튼을 걷으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한 알 한 알 창문에 내리 박더니 곧 내 사르르 사라진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사라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커피도 눈과 함께 사라졌다.
너저분한 서랍 속을 정리하다
그에게 주려고 만든 목도리를
한 구석에서 발견했다.
멍하니 그 목도리를 바라보다가
만져보고 내 목에 한 번 걸쳐보았다.
그리고는 나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실을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냈다.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며 목도리는
꼬불꼬불한 실 가닥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지켜보고 있는 길목에서,
그는 두 손을 옷 주머니에 꾹 눌러 놓은 채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 서 있는 나는 그의 눈길이 향한 바닥을 바라보니
우리의 그림자는 길게 겹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나를 남겨두고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다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나는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 사이로,
하염없이 걸었다.
모든 것이 내 눈에 한 번 밟혔다가 사라진다.
내 그림자만이 지겹게 나를 따라오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내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내 그림자도 나를 쳐다본다.
나는 사라지는 방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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