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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Mar 25. 2024

연기를 팝니다 -3화-

공원의 밤하늘에 벚꽃잎들이 가로등 빛을 타고 와 눈처럼 진헌과 규민이의 앞에 내리고 있었다. 그다음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헌은 공원 벤치에 판넬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미리는 진헌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진헌에게 껑충껑충 뛰어왔다.


“아저씨 출장 연기도 해요?”

“몰라 어제만 그렇게 했어”

“아저씨 출장 부르면 돈 많이 들어요?”

“그럼 엄청 많이 들지”

“흐음.. 저 이번에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을 올리는데 저희 연습 지도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안 해”

“에이 해줘요 해줘. 돈은 동아리 회비에서 이만큼 주기로 했어요”


미리는 핸드폰으로 액수를 보여줬다. 진헌은 가만히 쳐다보더니 크흠크흠 헛기침을 했다.

“언제부터 나가면 돼?”

“뭐야 생각보다 아저씨 적은 돈에 넘어오네”


며칠 후 진헌은 미리 학교에 가서 아이들 연기하는 걸 조금씩 지도해 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깔깔깔 웃으면서 장난을 치다가도, 연기 연습이 시작되면 나름 집중해서 하는 모습이 진헌의 눈에 예뻐 보였고 조금씩 정을 쌓아나갔다.

연기 연습이 끝난 후 진헌과 미리는 같이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벚꽃들은 지고 푸릇푸릇 나무들이 저녁 하늘을 채웠다. 진헌은 문득 궁금해져서 미리에게 물어봤다.


“너는 갑자기 왜 배우가 되고 싶은 거야?”

“제가 한 외모 하니까?”


미리는 진헌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해맑게 웃었다. 진헌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리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진헌에게 얼굴을 찡그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딱히 꿈이 없었는데, 아저씨가 저한테 아빠 연기 해줄 때마다 계속 꿈을 꾸게 되는 거예요. 아 나도 이런 따듯한 말을 들을 수 있구나 하고 잠시 현실을 잊게 되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계속 아저씨를 연기를 반복해서 보다 보니 또 어느새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이런 따듯한 꿈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요.”


“그동안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아빠가 혹시 안 계시니?”

미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까르르 웃으며


“아니요. 아빠 팔팔하게 살아계세요. 너무 팔팔해서 문제지만... 아저씨 저 집 다 왔어요

인제 그만 들어가 볼게요! 내일 봐요~~! “


미리는 집 현관문에 들어오자마자 욕이 들려왔다.


“썩을 년, 뭐 한다고 지금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야 지금 나가서 쓰레기나 버리고 라면이나 끓여 와라”

미리는 아무 말 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다시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밀리네 아빠는 들어오는 미리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어휴 저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새끼들 이러니까 나라가 망하지”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리모컨 눌러 채널을 돌린다. 티브이 화면에 어떤 연예인이 웃고 떠드는 장면이 나오자


“저 새끼는 욕심만 가득하게 생겨서 계속 티브이에 나오고, 지랄이야”

계속 욕을 해대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콱콱 돌리고 있었다.

“아빠, 욕 좀 그만할 수 없어? 집에 오자마자 들리는 게 욕뿐이라서 진절머리나”

“뭐 이년아? 그렇게 듣기 싫으면 집에 쳐들어오지 마. 계집애가 밤늦게 쳐 싸돌아 다니기나 하고 천박하다 천박해”

“나 놀다가 온 거 아니야, 학교에서 연극 연습하고 온 거야”

“연극? 하이고 지꼴에 무슨 연기를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야 그냥 잠이나 쳐 자라

무슨 바람이 나서 연기는 무슨…. “

미리는 아빠를 노려보다가 다시 마루 장판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한 번쯤은... 한 번쯤은.. 좋은 얘기를 해줄 수 없어? 나 아빠 딸이잖아...

딸이 꿈을 생겨서 연기를 한다는데 아빠는 늘! 왜 입에 걸레를 물고 살아! 그러니까 엄마가..”


“엄마…. 엄마 뭐? 이년이 내가 입에 걸레를 물고 살아서 엄마가 나갔다는 거야? 너희 엄마가 바보같이 구니까 욕을 했지 괜히 내가 욕을 했겠냐? 고작 그거 가지고 이혼하자고 한 네 엄마가 미친 거지, 야 그리고 결국 내가 너 데리고 사는 거야, 네 엄마는 널 버렸다고 멍청이야, 아우 저 못된 년 그럼 너도 나가! 뭐 하러 이 집에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너도 아빠 버리고 나가면 되겠네 “


아빠가 리모컨을 던지고 미리에게 다가오자, 미리는 재빨리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미리네 아빠는 잠긴 방문을 덜컥덜컥하며 문 앞에서 하염없이 미리에게 욕을 퍼부었다.

미리는 이어폰을 끼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미리는 진헌이 연기해주는 모습이 하염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진헌은 공원에 나와 벤치에서 졸고 있었다. 미리가 진헌에게 “아저씨!!! “ 하고 우다다 달려왔다.


“야 너 학교 가야 할 시간 아냐? 여길 지금 왜와”

“그냥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원에 왔어요. 뭐 한번 지각한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미리는 주머니에서 재빨리 5천 원을 꺼내서 진헌이 손에 쥐어주었다.


“아저씨 저 아빠 해줘요 얼른! 급해요 급해!”


“흠.. 오늘은 어떤 상황으로 해줄까?”

“음.. 제가 연기자를 꿈꾸는 거 그걸 응원해 주는 아빠요 “

저도 요새 연기를 배우니까 저도 대사를 한마디 할래요 

“아빠.. 나 꿈이 생겼어. 배우... 배우가 되고 싶어 따듯한 꿈을 주는 그런 배우”

미리의 대사를 하며 진헌을 바라보는데 눈에는 기대와 슬픔이 같이 섞여 있었다.

진헌은 그런 미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아주 따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미리의 손을 잡았다.

“미리야, 아빠는 네가 그런 꿈을 꾼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미리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동안 네가 살아온 모습을 보면 알아, 미리를 보면 늘 날씨 좋은 하늘을 보는 것 같아. 맑고 푸르고, 뭉실뭉실한 구름이 기분 좋은 바람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말이야. 넌 분명 좋은 배우가 될 거야. 이 아빠가 아낌없이 응원해 줄게. 무엇보다 우리 미리는 너무 예쁜걸 “


진헌은 미리의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리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웃었다 


“아저씨 마지막 저는 예쁘다고 하는 건 저 놀리는 거죠?”

미리는 쑥스러운 듯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우리 연극 올리는 날도 별로 남지 않았네요”

“그러게” 진헌은 미리가 바라보는 하늘을 같이 바라봤다.


푸릇푸릇한 초여름, 드디어 미리네 학교에서 연극 무대가 열렸다.

근데 무대에 올리는데 문제가 생겼다. 왕의 역할 맡은 남학생 한 명이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설사병에 걸려서 무대를 못 서게 되었다.

다들 분장을 하고 정신없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진헌도 같이 난감해하고 있었다.

미리는 진헌을 붙잡고 “아저씨 아저씨가 왕 역할 해줘요. 아저씨 대사도 다 외우고 있고 이 무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잖아요”

진헌은 당황해하다가.. 연극부 학생들이 다 자기만을 쳐다보는 걸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연극 무대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무대 뒤에서 미리와 진헌은 대기를 하고 있었다. 미리도 긴장은 했지만, 

유난히 진헌이 손을 바들바들 떨려하며 긴장하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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