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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Oct 25. 2024

연기를 팝니다 4화

공원의 밤하늘에 벚꽃잎들이 가로등 빛을 타고 와 눈처럼 진헌과 규민이의 앞에 내리고 있었다. 그다음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헌은 공원 벤치에 판넬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미리는 진헌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진헌에게 껑충껑충 뛰어왔다.


“아저씨 출장 연기도 해요?”

“몰라 어제만 그렇게 했어”

“아저씨 출장 부르면 돈 많이 들어요?”

“그럼 엄청 많이 들지”

“흐음.. 저 이번에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을 올리는데 저희 연습 지도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안 해”

“에이 해줘요 해줘. 돈은 동아리 회비에서 이만큼 주기로 했어요”


미리는 핸드폰으로 액수를 보여줬다. 진헌은 가만히 쳐다보더니 크흠크흠 헛기침을 했다.

“언제부터 나가면 돼?”

“뭐야 생각보다 아저씨 적은 돈에 넘어오네”


며칠 후 진헌은 미리 학교에 가서 아이들 연기하는 걸 조금씩 지도해 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깔깔깔 웃으면서 장난을 치다가도, 연기 연습이 시작되면 나름 집중해서 하는 모습이 진헌의 눈에 예뻐 보였고 조금씩 정을 쌓아나갔다.

연기 연습이 끝난 후 진헌과 미리는 같이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벚꽃들은 지고 푸릇푸릇 나무들이 저녁 하늘을 채웠다. 진헌은 문득 궁금해져서 미리에게 물어봤다.


“너는 갑자기 왜 배우가 되고 싶은 거야?”

“제가 한 외모 하니까?”


미리는 진헌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해맑게 웃었다. 진헌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리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진헌에게 얼굴을 찡그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딱히 꿈이 없었는데, 아저씨가 저한테 아빠 연기 해줄 때마다 계속 꿈을 꾸게 되는 거예요. 아 나도 이런 따듯한 말을 들을 수 있구나 하고 잠시 현실을 잊게 되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계속 아저씨를 연기를 반복해서 보다 보니 또 어느새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이런 따듯한 꿈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요.”


“그동안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아빠가 혹시 안 계시니?”

미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까르르 웃으며


“아니요. 아빠 팔팔하게 살아계세요. 너무 팔팔해서 문제지만... 아저씨 저 집 다 왔어요

인제 그만 들어가 볼게요! 내일 봐요~~! “


미리는 집 현관문에 들어오자마자 욕이 들려왔다.


“썩을 년, 뭐 한다고 지금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야 지금 나가서 쓰레기나 버리고 라면이나 끓여 와라”

미리는 아무 말 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다시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밀리네 아빠는 들어오는 미리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어휴 저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새끼들 이러니까 나라가 망하지”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리모컨 눌러 채널을 돌린다. 티브이 화면에 어떤 연예인이 웃고 떠드는 장면이 나오자


“저 새끼는 욕심만 가득하게 생겨서 계속 티브이에 나오고, 지랄이야”

계속 욕을 해대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콱콱 돌리고 있었다.

“아빠, 욕 좀 그만할 수 없어? 집에 오자마자 들리는 게 욕뿐이라서 진절머리나”

“뭐 이년아? 그렇게 듣기 싫으면 집에 쳐들어오지 마. 계집애가 밤늦게 쳐 싸돌아 다니기나 하고 천박하다 천박해”

“나 놀다가 온 거 아니야, 학교에서 연극 연습하고 온 거야”

“연극? 하이고 지꼴에 무슨 연기를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야 그냥 잠이나 쳐 자라

무슨 바람이 나서 연기는 무슨…. “

미리는 아빠를 노려보다가 다시 마루 장판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한 번쯤은... 한 번쯤은.. 좋은 얘기를 해줄 수 없어? 나 아빠 딸이잖아...

딸이 꿈을 생겨서 연기를 한다는데 아빠는 늘! 왜 입에 걸레를 물고 살아! 그러니까 엄마가..”


“엄마…. 엄마 뭐? 이년이 내가 입에 걸레를 물고 살아서 엄마가 나갔다는 거야? 너희 엄마가 바보같이 구니까 욕을 했지 괜히 내가 욕을 했겠냐? 고작 그거 가지고 이혼하자고 한 네 엄마가 미친 거지, 야 그리고 결국 내가 너 데리고 사는 거야, 네 엄마는 널 버렸다고 멍청이야, 아우 저 못된 년 그럼 너도 나가! 뭐 하러 이 집에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너도 아빠 버리고 나가면 되겠네 “


아빠가 리모컨을 던지고 미리에게 다가오자, 미리는 재빨리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미리네 아빠는 잠긴 방문을 덜컥덜컥하며 문 앞에서 하염없이 미리에게 욕을 퍼부었다.

미리는 이어폰을 끼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미리는 진헌이 연기해주는 모습이 하염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진헌은 공원에 나와 벤치에서 졸고 있었다. 미리가 진헌에게 “아저씨!!! “ 하고 우다다 달려왔다.


“야 너 학교 가야 할 시간 아냐? 여길 지금 왜와”

“그냥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원에 왔어요. 뭐 한번 지각한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미리는 주머니에서 재빨리 5천 원을 꺼내서 진헌이 손에 쥐어주었다.




“가만히 있었던 동생도 내가 화내는 모습에 놀랐고 엄마는 더 슬피 울고. 그대로 화가 난 채로 공연장에 갔어 “


“무대 준비로 바빠서 핸드폰을 보지 못한 채, 열심히 공연 준비를 했지. 그리고 연극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어.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지. 그렇게 화려하게 무대를 끝마치고 핸드폰을 봤는데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온 거야”


진헌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말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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