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왜 이렇게 떨어요? 긴장돼요?”
“아 뭐…. 그냥..”
시간이 되고 미리와 진헌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른 순간 여러 조명이 진헌을 비추고 있어 진헌은 눈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진헌은 관람석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진헌은 재빨리 무대 뒤로 달려 나가 버렸다. 미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대에 잠시 있다가 진헌을 따라 무대 뒤에 들어갔다.
관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무대에 있던 다른 배우 한 명이 애드리브로 가까스로 무대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 미리는 도망가는 진헌을 붙잡고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왜 그래요? 아저씨”
“미안해, 나 못 할 것 같아 무대에 못 올라가겠어.”
“아저씨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잘했잖아요 근데 왜 갑자기...”
“그게...”
진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진헌의 주변에 같이 연기를 준비해 온 학생들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모두 진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들면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미리는 진헌의 손을 꼭 붙잡았다.
진헌은 그동안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천장을 보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더니 자기 손을 잡고 있던 미리의 손을 이끌고 다시 무대에 나갔다.
미리는 어리둥절했지만 진헌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면서 미리도 그동안 준비했던 연기를 선보였다. 중간에 진헌의 실수가 한 번 있었지만 성공적이게 막을 내렸다. 진헌은 아이들에게 수고했다고 하며 자신 때문에 극을 망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들은 그런 진헌에게 괜찮다며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졸랐지만, 진헌은 거절하고 학교를 나왔다. 미리는 걱정이 되어서 진헌을 따라나섰다.
미리는 말없이 진헌의 발걸음을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갔다. 한참을 걷다가 어느새 공원의 벤치에 도착했고 진헌은 벤치에 앉고 미리도 말없이 따라 진헌의 옆에 앉았다.
침묵이 흐른 후.. 진헌은 말을 꺼냈다.
“무대에 서서 관람석을 보면.. 동생이 보여... 그래서 더 이상 무대에 못 오르겠더라”
“동생이 우울증이 많이 심했거든... 방에 계속 누워만 있고 거의 밖을 나오지 않았어. 나는 그게 답답했고 “
미리는 가만히 진헌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어떡해. 내 동생인데.. 누워있는 동생에게 다가가서 좋은 말을 많이 해줬지
타일러도 보고 병원도 가보자 권유도 해보고.. “
“근데 동생은 그냥 더 깊은 굴로 들어만 가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 동생이 커터 칼로 자해를 한 거야”
“그냥... 그때는 걱정보다는 화가 났어. 엄마는 거실에서 울고 계시고, 아빠는 조용히 집 밖을 나가시고, 나는 그날 중요한 연극 무대가 있었거든. 그런 상황이 그냥 난 짜증이 난거지”
“그래서 처음으로 동생에게 화를 냈어, 이제 네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지친다고 죽을 거면 혼자 조용히 죽으라고 나도 정신이 나가서 매몰차게 얘기했지.”
미리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면서 숨을 죽이고 진헌을 바라보기만 했다.
“바보 같은 놈이 내가 그렇게 화낸 거에 충격을 받았는지, 미안했는지. 내 연극을 보러 오겠다고 택시를 탄 거야.. 근데…. 근데.. 졸음운전 하던 트럭에…. 사고가..”
“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생각난 거는, 나는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지?”
진헌은 눈물을 숨기려고 밤하늘 달을 쳐다보며 숨을 크게 쉬었다.
“하아.. 그게 두고두고 후회되었어.. 그냥 평소대로 좋은 말만 해줄걸.. 좀만 내가 참을걸”
“그 이후로 무대에 올라가서 관람석을 보면 동생이 보여. 동생이 계속 찾아와.
그러니 더 이상 무대에 못 올라가겠더라 “
“나를 원망해서 관람석에서 날 노려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공원에서 연기를 시작한 거야, 돈은 벌어야겠고 할 줄 아는 건 이것밖에 없고, 공원에는 적어도 관람석이 없으니. 연기를 할 수 있겠더라고. “
“그냥 처음에는 공원에서 무작정 돈을 벌려고 한 건데.. 하다 보니 사람들이 위로와 응원이 많이 필요로 하는지 몰랐었어. 그렇게 진심으로 위로와 응원을 전해주면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아닌가 봐”
“오늘 무대에도 여전히 동생이 나타나는 거 보면 동생은 그냥 내가 연기하는 게 싫은가 봐. 동생이 보이면 재빨리 시선을 피해서 표정이 잘 안 보이 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하고 나와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게 얼마나 싫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
미리는 무언가 말을 진헌에게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로 먼저 시작해야 할지 가늠조차도 하지 못했다.
“에휴, 다 그만해야겠다.”
하고 진헌은 미리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미리는 진헌이 쳐다봤던 밤하늘의 달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벤치에 세워져 있던 진헌의 연기를 판다는 판넬을 괜히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