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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Oct 25. 2024

연기를 팝니다_8화

다음 날 아침, 진헌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수염도 밀고 아주 단정한 모습으로 오랜만에 공원 벤치 앞에 새로운 패널을 두고 앉았다.

[오늘, 마지막 연기를 팝니다. 커튼콜은 오후 5시]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진헌을 보고 다들 아주 반가워하며 인사를 했다. 노점 상인들도 가게를 제쳐두고 진헌에게 인사하기 바빴다.

새로운 판넬을 보고 이제 돌아와서 기뻤는데 보자마자 이별이라니 너무 아쉽다며 왜 그만두는지 다들 물어봤다. 진헌은 한 번에 얘기할 테니 저녁 5시에 꼭 와달라며 말을 아꼈다.

다들 아쉽지만 마지막이라고 하니 진헌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 다들 5천 원을 들고 줄을 서서

진헌에게 자신들이 보고 싶던 연기를 요청했다.

진헌에게 고백해달라던 번데기 아주머니도, 상사에게 말대꾸를 하고 싶었던 직장인도

규민이는 같이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 달라며 요청을 하기도 했다.

진헌이 나왔다는 소식에 미리도 헐레벌떡 공원으로 나왔다. 미리도 판넬을 보고 아쉬워했고

마지막이라고 하니 늘 똑같던 아빠 연기를 5천 원을 주며 요청했다.

진헌은 돈을 쥔 미리 손을 밀어냈다.

“더 이상 너에게 아빠 연기를 해주지 않을 거야” 그러더니 미리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얘기했다.

“그냥 나로서, 아저씨로서 응원과 위로를 많이 해줄게. 더 이상 아빠를 붙잡지 마. 아빠를 놓고 널 응원해 주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보자. 일단 나를 찾았잖아. 그리고 넌 앞으로 분명 널 응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어른이 될 때까지 조금만…. 조금만 버티자, 아저씨가 도와줄게”


미리는 눈시울이 빨개지며, 눈물을 꾹 참고 진헌을 바라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어느덧 5시가 되자 공원에 진헌을 보러 온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였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저에게 5천 원이란 돈을 쥐여주면서 연기를 펼칠 수 있게 해서 고마웠어요. 근데 전 이제 여기서 연기 안 할 거예요”


“왜요!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왜 연기를 안 해요”


진헌은 한 번씩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무대로 돌아갈 겁니다. 나도 다시 부딪혀 보고 싶거든, 저도 여러분 메모지를 보고 응원을 보고 용기를 얻었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진헌은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공원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원에서 진헌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의 새로운 발걸음에 다들 힘차게 박수를 보내줬다.

공원 상인들은 진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응원한다며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번데기며 솜사탕이며 핫도그며 나눠주었다. 어떤 사람은 급하게 편의점에서 종이컵과 샴페인과 음료수를 사 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공원에서 진헌의 송별회를 작게나마 벌였다.

공원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어느새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고 공원에 수로도 노을빛으로 가득 차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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