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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Feb 08. 2021

멈춤.

탁닛한 쉬기 명상을 읽고.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듣고 멈춘 것인지, 마음의 신호를 듣고 멈춘 것인지, 그냥 난 멈추었다. 몸은 다시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마음은 항상 그렇듯 혼자서 날리 법석이다. 그저 그 마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마음은 밴댕이 소갈딱지 만도 못하다가 갑자기 넓디넓은 부처님 마음처럼 넓은 척을 했다가, 3살 배기 어린아이 마음처럼 촐랑 되기도 하더라. 옹졸할 때도 있어 그땐 스스로 얼마나 부끄럽던지. 마땅히 숨을 곳도 없더라.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가끔씩 하얀 백지상태인지 어두운 컴컴한 상태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드는 시기도 있었다. 마치 머릿속이 텅텅 비어 치매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알람을 끈 채 천장을 보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새벽 기상 습관을 몸에 익힌 지 1년이 되어 간다. 푹신한 베갯속에 파묻혀 있던 폭탄 맞은 머리부터 들어 올려 천근 같은 몸을 서서히 일으킨 후 나만의 시간을 가진 뒤 부엌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새벽 수영훈련이 있는 아이를 위해 도시락 2개를 쌌다. 오늘 아침은 삶은 고구마와 베리류 ( 블루베리, 블랙베리, 체리, 사과, 방울토마토)그리고 오디 주스, 점심은 페니 볼로 니즈 파스타를 소스와 면을 따로 넣어 주었다. 동시에 야근 때문에 전날 저녁을 대충 챙겨 먹은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 주었다. 보통 토스트나 아이 점심 도시락을 아침으로 먹고 가는 남편이다. 그러나 이날은 특별히 비록 어제 끓인 김치찌개이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에 얼른 데워 계란 프라이 하나와 밥을 차려 주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도시락을 무척 정성 들여 싸주는 듯한데, 일주일에 3번은 냉동식품으로 대처하는 날도 있다. 우리 집 냉동실은 치킨너겟, 비엔나소시지, 팝콘치킨, 핫도그, 백설기 떡, 떡갈비 정도의 냉동음식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새벽 6시 15분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우곤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남자는 후다닥 일어나 새벽 준비를 후다닥 마친 후 6시 50분에 한 사람은 학교로 한 사람은 회사로 각자 갈 길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 마냥 알아서 간다. 난 다시 홀로 텅 빈 집에 남았다. 그 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벅찬 마음과 감사함에 먹먹한 마음을 홀로 꼭 감싸 않을 때가 있다. 참으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한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그 둘에게 감사하다. 


그들이 떠난 뒤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까운 아침 시간을 부여잡기 위해 주방일을 서둘러 마친 후 빨강 맥심 커피(노랑 보다 빨강 오리지널을 난 좋아함) 한잔과 명상 음악을 켜고 운동 가기 전 나의 시간을 다시 한번 가진다. 마음 다함 시간이다. 가끔 눈물이 흐를 때도 있지만 딱히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뭐 암울한 건 아니다. 그냥 막연히.. 그러고 나면 다시 속이 후련 해진다. 마음 다함 시간은 꽤 평화롭다. 그러다 보니 이 시간에 중독되어 매일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서 항상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고 설레는 시간이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다. 가끔 세탁기에서 '삐 삐' 세탁을 마쳤다는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지만 빨래를 그냥 세탁기 속에 넣어 둔 채 난 나의 마음 다함 시간을 가진다. 그럴 땐 탈수 헹굼만 10분 더 돌린 뒤 빨래 걸이에 차곡차곡 널면 된다.


시간에 쫓기는 노예가 되지 않고 나 스스로가 주인이 되겠다고 수십 번 수천번 다짐을 하지만, 40여 년생을 시간에 쫓겨 하루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 못한 나의 습이 남아 있어 단번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계속 깜박깜박한다. 다 낡은 형광등 불빛이 껌뻑 껌뻑하듯이. 형광등은 새로 갈면 되지만 나의 뇌는 그렇지도 못할 텐데..


근래 책의 글자가 눈에서 자꾸만 튕겨 나갔다. 조그만 고무공이 바닥을 치며 튕겨 나가듯 글자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인문학과 철학, 고전 책을 읽고 싶어 조금씩 페이지를 정해 읽고 있는데 말 그대로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책 ‘틱낫한의 How to …’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고 난 입을 크게 벌린 뒤 한입에 우거적 씹어 먹어 버렸다. 애벌레가 싱그런 초록 잎사귀 위를 그림 그리듯이 먹어 치우듯, 난 틱낫한 스님의 책을 꿀~꺽 해버렸다. 


잔잔한 물결과 공기 속에 가볍게 동동 떠 있으나 떠 있지 않는, 깊은 바다 수면 속 고요함과 같은 그분의 글이 참 좋다. 책을 읽는 동안 온 마음을 다해 훑어 내려갔다. 다른 명상 시리즈도 함께 같이 읽었다.  


그중 


'쉼' 

“숲을 집으로 삼고 살아가는 동물은 몸에 상처를 입으면 그저 쉽니다.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에 찾아 들어가 며칠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쉽니다. 오직 쉬기만 하는 이 시간이 몸을 가장 잘 치유해준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이 치유 기간 중에는 먹고 마시는 일 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몸의 치유에 전념하는 이런 쉼의 지혜가 동물들에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인간은 쉼의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멈추라 이야기했다. 우리 인간은 잠을 자면서도 달리고 있다고, 제발 멈추라고 했다. 그분의 글이 마음속에서 나의 무의식 속에서 그렇지 못한 현실과 상충되어 자꾸만 부딪힌다. 일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알 수 없는 마음과 현실의 두려움이 만나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끙끙 거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훗! 하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늘 저녁은 또 무얼 해 먹어야 하나? 반찬을 주문할까 말까 망설이다 조개 미역국으로 메뉴를 정했다. 

달달한 믹스 커피나 한잔 더 마셔야지...



1월의 어느 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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