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 앞에서
육아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산 지 17년...
내 친구들도 나와 비숫한 시기에 결혼해서 육아 17년 내공을 발휘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아이들이 청소년 또는 초등학생이다. 지금은 하루하루 지지고 볶으면서 아이들 삼시 세끼 챙기고 살림하고 일도 하면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 하루하루가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차의 속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특히 아이가 영유아기 일 때는 수시로 잠을 깨고 부모를 찾는 아이들을 보느라 자신을 챙길 새 없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실감한다. 최강의 극기훈련을 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는 아파도 못 쉰다는 말을 실감하며 부모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생존하는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살게 된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이 삶이 정말 내가 꿈꾸던 삶이었나?를 생각하게 될 즈음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될 때부터이다. 물리적인 양육은 아이들 스스로도 바라지 않고 아이들도 본인들의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느낄 때쯤이다.
스스로 씻고 먹고 입고가 가능해지면서 아이들이 또래집단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혼자 외출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친구 집에 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보니 혼자 친구 집에 가서 놀다 오기도 하고 집 앞 놀이터에서 부모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 부모와 자녀의 거리는 눈에 띄게 멀어진다. 그때부터 부모들은 다시 돌아온 여가 시간을 갖게 되는데 자녀 양육에 온 정신을 쏟았던 부모에겐 둘만의 여가 시간이 어색할 수도 있다. 사람은 참 적응을 잘하는 존재인지 내 삶의 이방인 같기도 했던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 오히려 어색해져 버린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여가시간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한때 잘 나갔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제 아이들도 웬만큼 컸는데 일을 찾아볼까?'
'그동안 배우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배우던 악기를 배워볼까?'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를 만나볼까?'
중년 사춘기라고도 느껴지는 이 시간에 나를 찾는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나도 한때 잘 나갔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청춘을 다 보낸 것만 같고...
알게 모르게 보상심리와 복잡한 감정들이 마음 한가운데에 올라오게 된다. 바쁜 육아로 인해 미뤄두고 눌러뒀던 한 인간으로서의 욕구들이 스멀스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이럴 때 너무 우울해하거나 내 청춘 돌려줘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 인생에 새로운 막이 열리는구나~'라는 신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들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지금까지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씩 하다 보면 중년이라는 기간이 나이만 먹었구나라는 속상한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살아온 나에게 소소한 보상들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같은 상황에 대해서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도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때론 처음 하는 부모라는 역할을 버겁게 느낀 적도 많지만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나를 칭찬하며 스스로를 칭찬하면 어떨까?
처음엔 길지 않은 자유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그것은 모든 부모가 겪게 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생 선배로서 아이들을 업고 안고 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아이들 앞에서 걸어갔지만, 이젠 아이들 옆에서 함께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다 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들보다 천천히 걷게 되고 어느 순간 아이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마치 오늘이 다인 것 같지만 우리 삶엔 흐름이 있다. 한때 잘 나갔던 나를 추억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오고 있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살아가고 숨 쉬고 있는 현재에 머물러 보는 건 어떨까?
한때 잘 나갔던 빛나는 시절은 추억으로 남기고 자랄수록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키우며 아쉬워하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빛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자. 내 인생의 길의 열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다. 내 시간의 주인은 남편도 아이들도 아닌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