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기 전 내가 보고 상상해 온 임신기의 모습
한껏 나온 배를 뽐내며 즐거워하고 설레는 모습이었다.
삶의 활력, 의욕은 사라지고 얼굴 탄력도 잃은 듯하다. 꾸밀 의욕 따위는 없고 편한 옷만 입다 보니
초췌하기 짝이 없다. 평소 운동복을 입고 눈바디를 찍던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몸의 라인은 무너지고
지방은 점차 늘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불안하기도 하다.
'운동은 좋아하지만 다이어트를 각잡고 해본 적이 없는데, 출산 후 돌아갈 수 있겠지..?'
마침 여자가 생애 몇 번 급 늙는다는 노화시기도 겹친 것 같다.
차라리 배가 불뚝 나와 누가 봐도 완전한 임산부의 모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 걸까?'
14주 혹은 16주엔 입덧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니 한 주 한 주 손꼽아 기다린다.
임신 끝까지 입덧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임신초기는 시간이 왜 이렇게 가지 않는 걸까.
12주가 지났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작 토는 13주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공복에 미친 듯이 울렁거리덧 공복 입덧은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무언가가 사라지고 또 다른 것이 찾아왔는데 무서운 임산부 소양증이다.
가려움증이 무서운 이유는 통증처럼 바로 병원에 가지 않고
무심코 지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다 말겠지, 견딜 만 해' 하면서 긁다 보니 점점 번져 온몸이 상처 투성 만신창이가 된다.
혹여 약이 태아에게 좋지 않을까, 내 몸이 조금 망가지는 게 낫다며
'그래 난 엄마야..' 하며 견뎌본다.
평소 사용하던 옷, 속옷, 이불까지 모두 교체해 보고 각종 정보를 찾아 민간요법을 동원해 봐도 소용이 없다.
"임신 황금기"가 나에게도 오긴 하는 걸까?
대망의 16주, 미슥거리던 입덧은 정말 서서히 사라지는 듯하다.
평소 지나만 가도 역하던 냄새들이 아무렇지 않아 졌다.
일반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 참 행복하다.
입덧 덕분에(?) 많이 먹지 않아 살도 별로 찌지 않은 것 같고 임산부인 줄도 잘 모르니 이득인 것 같다.
'이렇게 날씬한 임산부의 모습으로 쭉 지낼 수 있겠지?'
그렇게 어느덧 20주 차가 되어 점차 "입덧이 언제 있었지?" 싶다.
돌아온 식욕과 함께 그동안 무력감에 하지 못했던 삶의 의욕(?)도 솟아난다.
책집필, 영상 편집, 부동산 공부 등 쉴 새가 없다. 뱃속에 아이의 힘으로 두뇌회전이 더 빠른 듯 느껴진다.
21주 차 정밀 초음파를 무사히 마치고 태교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는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컨디션이 최상이다.
식욕도, 기분도, 체력도 모든 게 회복된 듯하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축하를 받고
많은 배려와 '우쭈쭈' 대우를 받으며 유세 부리는 임산부의 삶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축복을 받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으며 "내"가 주인공이 되는 마지막 시기
이러니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라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대우를 받겠는가. 출산 후에는 어림도 없을 테니 이런 때 즐겨야 한다.
참 감사하게도 나에게도 와주었다.
"임신 황금기"가 이거구나!
하지만 어떠한 증상과 불안함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임산부에게는 "기분 나쁜 말" 일지도 모른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임신 말기와 출산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잘 해냈으니 괜찮을 것 만 같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려운 첫 임신 초기 만큼 힘들까?
사람이 참 간사하고 신기하다.
힘들어 죽겠다고 하다가도 어느샌가 지나가 "내가 언제 그랬지?" 싶으니 말이다.
입덧의 지옥도, 죽을 것 같은 출산의 고통도 그렇게 흘러 아이의 웃음과 함께 잊히겠지.
신이 준 "망각"이라는 선물 덕분에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임신, 출산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