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삐빅 삐빅, 삐빅 삐빅"
우렁찬 아이폰 알람에 잠에서 깨 시간을 본다. 현재 시간 아침 6시, 지난주 토요일 출근으로 맞춰뒀던 알람을 끄지 않았던 것이다. 커튼을 걷어보니 날씨는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였다. 일어난 김에 아침 조깅을 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밖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날씨는 쌀쌀했다. 천천히,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해 본다. 매번 밤에만 뛰다가 이렇게 아침에 뛰는 건 처음인데 역시 건강을 지극하게 생각하는 중국인들답게 밤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한 1km쯤 뛰었을까. 숨이 가빠진다. 다리에도 몸에도 힘이 없는 듯한 느낌. 사실은 뛰기 싫은 마음이 커서 일 텐데 오늘 일정을 소화하려면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핑계와, 괜스레 흐린 날씨를 탓하기도 하고, 사람이 많아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늘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상상과, 반대편에서 부는 맞바람 때문이라는 확신을 하기도 한다. 결국 3km밖에 뛰지 못했지만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는 몸이 가볍고 시작이 좋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은 흔히 ‘거지 세트’라고도 불리는 가성비 버거킹 모닝으로 머핀, 쑥 맞이 나는 랩, 아메리카노를 섭취하며 영양분을 공급해 줬다.(거지세트는 중국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mz세대 사이에서 널리 퍼진 최고의 가성비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뜻하며 주로 맥도널드 kfc 버거킹 등과 같은 햄버거 프랜차이즈 집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집으로 돌아가 씻은 후에 나름 이쁜 옷을 골라 입고 다시 밖을 나섰다. 목적지는 위원루, 상해 교통대학에서 11호선으로 갈아탄 뒤 짱수루 7번 출구에서 내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외국인에게는 아직 덜 알려진 요즘 MZ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중 한 곳이다. MZ가 가는 곳은 못 참지.
위원루에는 플래그십 느낌으로 운영하는 CCCAT 캐릭터 굿즈 판매점이 있었다. 대기 줄이 길었지만 자석에 끌린 듯이 어느 순간 대기 줄 맨 뒤에 붙어있었다. 남자 혼자 줄을 서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고 한다. 역시 또 무언가 레어 하다.
아이쇼핑만 하기 위해 지갑은 저 깊은 심해에 묻어 두었는데, 부력 탓에 결국은 열리고 말았다. CCCAT 구경을 마치고 직장 동료가 추천해 준 창사 음식점으로 향했다. 걸어가면 30분이 넘는 거리지만, 동네 구경하는 맛이 쏠쏠해 걸어갔다. 창사 음식점은 물론 주변에 음식점들도 웨이팅 줄이 꽤나 길었다. 한국에서 런던베이글 4시간 웨이팅이라는 꽤나 화려한 업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CCCAT도 남자 혼자 대기했지만.. 과감하게 패스하기로 했다.
그 길로 좀 내려오니 중국 관광지 중에 한 곳이 정안사가 나왔다. 도심 속의 사찰로 유명한 정안사는 짓는데 1조가 넘게 들었다는 말이 있다. 관광지답게 외국인이 많고 상해에서 보기 드문 호객꾼 들도 있었다.
한 호객꾼 아주머니가 나한테 오더니,
"거기 잘생긴(?) 청년!! 같이 들어가자. 공짜로 설명해 줄게!!"
(중국에서는 말을 붙일 때 帅哥,美女와 같이 잘생긴 청년, 이쁜 처자(?) 등으로 시작한다.)
"아뇨 아뇨, 저 그냥 보러 왔어요. 괜찮습니다 ㅎㅎ"
한 번 거절에 포기하면 호객꾼이 아니다. 그 아주머니도 끝까지 따라오시길래,
"저 외국인이에요!!"라고 했더니,
"무슨 외국인이야, 중국 말도 하는데 거짓말하지 마"
(마음의 상처를 정말 조금,,, 조금 받았다)
"저 한국인이에요,,, 못 알아들어요"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금장식으로 화려한 절이라서 그런지 주변은 죄다 명품 매장이 접수했다. 그렇게 정안사 구경을 마치고 다시 위원루 쪽으로 돌아가던 길 꾸이린 미펀집을 발견했다. 예전에 '꾸이린 미펀의 꿉꿉함에 대해서'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너무 반가웠다.
기억 속에 상당히 미화되어 있는 삼겹살 튀김이 올라간 메뉴는 없었지만, 꾸이린미펀의 특유의 꿉꿉함이 향수를 자극해 맛있게 먹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돌아가던 길, 길을 잃었는데 그냥 그렇게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우연히 식후 디저트 타임이 찾아왔다.
대만과 미국에서 먹어봤던 85도씨에 들려 버블밀크티 하나를 구매했다. 밀크티를 다 마실 때까지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 85도씨에서는 소금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쩐주나이차(버블밀크티)를 주문해 버린 것이다. 한국인의 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이루어져 있냐는 농담이 있는데, 나는 이제 쩐쭈나이차로 이루어져 있나 보다.
오늘은 축덕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는 축구계의 레전드들이 한국에서 본 게임에 앞서 이벤트 매치를 하는 날이다.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로 재밌게 시청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무나도 즐거운 하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