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쑨잉샤(중국)
2000년생.
단식 세계 랭킹 1위, 혼합 복식 랭킹 1위(+왕추친)
전형 : 오른손, 셰이크핸드 올라운드
24년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은메달
24년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체전 금메달
24년 파리 올림픽 탁구 혼성 복식 금메달(+왕추친)
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금메달
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금메달
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혼합 복식 금메달(+왕추친), 3관왕
완전 왕초보의 첫 레슨일. 레슨은 5시지만 몸도 풀고 미리 땀 좀 뺄 생각으로 두 시간 일찍 갔다. 들어가니 일순간 탁구공의 소리가 줄어들며 회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들 ‘저 처음 보는 분은 누구지?’라는 표정이다. 대뜸 “안녕하세요” 하고 허공에 인사한다. 인사하자 비로소 공에 다시들 집중한다. ‘아 이런 분위기구나’ 눈치가 먼저 반응해 버린다.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하며 구장 분위기를 조금 더 면밀하게 살핀다. 점심이 지나 저녁 전인 이 시간엔 빈 테이블이 주는 여유로움까지 묻어났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으면서 공을 주고받고 있었고, 친밀하다 못해 유대감까지 느껴졌다. 탈의를 하고 나올 때 반갑게 인사해 주는 한 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관장님의 남편 되는 부관장님. “어제 등록하고 오늘 첫 레슨 받습니다.”했더니 “전에 쳐 보신 적 있어요?” 묻는다. “전에는 그냥 막 치는 탁구.. 그 아시죠? 군대 탁구 같은 거..” 남자라면 대부분 이해한다.
아직 라켓 쥐는 법도 모르는데 일단 쳐보자고 해 무작정 넘어오는 공을 몇 번 쳐 보았다. 10번도 안 되는 횟수였지만 어찌어찌 공이 오갔더니 "랠리가 되는데요? 스윙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며 옆으로 와 이미 목각인형이 되어버린 팔과 몸의 자세를 잡아준다. 부관장은 이렇게 처음 온 회원들을 많이 챙겨주시는 분으로, 회원 간 ‘부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 같은 초보자들이나 머뭇거리며 의자에 앉아 멀뚱거리는 회원들, 잠시 쉬는 회원들도 편하게 공을 나누도록 한다. 구장 회원들의 면면을 다 알고 있고, 대략의 구력과 실력을 파악하고 있으니 교통정리가 확실하다. 시간이 지나 나에게도 새로 오신 분들을 자주 붙여주셨다. "두 분이서 치면 잘 맞을 것 같다"라며.
어디 탁구장만 그럴까 싶지만, 초심자는 상대방에게 먼저 공을 치자고 손 내밀기가 어렵다. 낯가림이 없는 편이 내 성격에도 선뜻 행동이 앞서지 않았다. 내 실력이 미천하니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민폐같이 느껴진다. 반대로 어느 정도 친 분들도 자기보다 잘하는 회원과의 탁구로 실력을 올리고 싶지, 누가 초보와 공을 넘기고 싶어 할까.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다행히 쭈뼛대며 앉아 있을 때마다 여러 회원분들이 다가와 먼저 동아줄을 내려주었는데, 그게 썩든 말든 일단은 잡고 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탁구를 즐기러 온 것이기에, 잘하냐 못하냐는 부차적인 것이기에. 참 신기한 것이 이 자그마한 테이블에 서로 공을 넘기다 보면 호흡이라는 것도 생기고 말하지 않아도 몸의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공을 나누기 전과 나눈 후엔 서로 예의를 갖춰 인사한다. 서로에게 일말의 배움이라도 얻었으니까. 먼저 공을 나누자고 하는 일련의 행동은 배려와 동시에 감사한 일이고, 나 역시 새로 오신 분들과 서슴없이 공을 나누는 멋진 회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치님과 대화 중 ‘탁구를 배워보고자’ 오는 이는 많아도 그 뒤 구장에 자리 잡고 치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과, 처음엔 호기롭게 레슨을 시작하지만 한두 달 지나 떠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단다. 호기심에 끌려왔으나 그 이상의 재미를 찾지 못한 경우, 레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아는 사람끼리만 모여서 운동하는, 친목이 강하게 굳어진 탁구장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중고거래를 찾다 보면 ‘탁구를 배워보려 샀으나 흥미를 잃어 판매합니다’라는 글로 주인과 헤어지기 전인 라켓과 용품들이 허다하다. 흥미를 가지기도 쉽지만 또 잃기도 쉬운 게 운동 아니겠나 싶지만, 안타까울 때도 있다. 반대로 구장에서 라켓 러버의 끝 면들이 다 뜯어졌거나 라켓이 골동품 수준인 열혈 회원들도 보인다. 탁구의 세계에선 러버가 해질수록 고수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내겐 더 눈에 띈다. 시작하고 나서 끝을 잘 못 맺는 내 성격상 초심의 열정을 잘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내 라켓 역시 해질 때까지 꾸준히 회원분들에게 쳐달라고 제안해야지 다짐한다.
부관장과 억지 랠리를 하는 그때, 바로 뒤에서는 언제 오셨는지 코치님이 앉아 매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분이 나의 코치님이구나.’ ‘내 지도를 받을 사람이 바로 자넨가….’ 말하지 않아도 눈으로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5시가 되기 전에 코치님이 나를 부르셨다. 드디어 ‘진실의 방’ 레슨실로 입장했다.
“탁구 쳐 봤어요?”
“네, 그냥 재미로 친구들과 쳤었습니다.”
“배워본 적은 없고요?”
“레슨은 처음입니다...”
내게 탁구의 모든 것을 알려줄 길잡이가 될 코치님이 아닌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잘 가르쳐 주십시오.”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코치님이 알람 타이머를 30분으로 맞춘다. 타이머의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레슨의 세계에 발을 담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