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프로 Mar 25. 2024

주운 사람은 임자가 아니다! 점유이탈물횡령죄

사람들을 망치는 낭설 :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

[생활 사례]


  길을 걷던 길동이 시야에 한 장의 신용카드가 들어왔다. ‘바닥에 웬 카드가’라고 생각하던 순간, 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나는 어둠에 두 눈이 멀어버렸다. 흑진주보다 아름다운 그 이름, 블랙카드. 길동이의 욕망은 미약한 이성을 순식간에 잡아먹었다. 꺼내 들기만 해도 주위 모든 사람에게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진귀한 블랙카드 아닌가!


  길동이는 내일 있을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이 기다려진다. 약속 장소를 꿀꿀삼겹살집에서 1++한우집으로 변경했다. 친구들은 한우보다 ‘1++’에 놀랐으리라. 즐거운 만남이 끝나고 결제의 순간, 길동이 지갑에서 블랙홀보다 깊은 검은색을 발하며 블랙카드가 출두한다. 결제액 : 130만 원. 1주일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경찰서 수사과 허균 수사관이에요. 홍길동 씨죠? 경찰서로 출석하세요”




[점유이탈물횡령죄 소개]



물건을 주운 사람은 그 물건의 임자가 아니야!     


  길에서 주운 물건은 남의 물건이다. ‘먼저 줍는 놈이 임자’라는 낭설은 형사법적 거짓말이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발견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지구대 또는 파출소에 가져다주거나, 112에 신고한 다음 출동 경찰관에게 전달하는 거다. 방금 말한 선택지 중 무엇도 뽑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떨어진 장소에 그대로 둬라. 최소한 잃어버린 사람이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남의 물건을 주워서 주인에게 반환하지 않고 ‘꿀꺽’하면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성립한다. 쓰레기가 아니라면 길바닥, ATM기기 주변, 카페 테이블, 은행 의자, 지하철 선반 위, 지하철 역사 안 등에 놓여 있는 물건은 모두 다른 사람의 물건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는 건 범죄다. 지인이 겪은 눈물 나는 사례를 소개한다.                    


  필자의 지인은 직업군인이다. 지인은 퇴근 후 동료와 술을 마시러 가기 위해 버스에 탔고, 버스 안에서  지갑을 주웠다. 지갑을 주운 다음 술집으로 직행한 지인은 동료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지갑은 집으로 들고 가 약 2주간 보관했다. 어느 날 헌병대 수사관이 지인에게 연락하여 출석을 요청했고, 지인은 그 길로 헌병대에 들어가 버스에서 주운 지갑 때문에 조사받았다. 지인은 헌병대 조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유이탈물횡령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견책' 징계 처분도 받았다. 지인은 정말 억울해했다.



  필자의 지인은 엄청나게 억울해했다. 그는 남의 지갑을 탐낼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지 않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볼 때 수사기관 입장에서 지인은 점유이탈물횡령죄의 범인이 맞았다. 습득한 물건을 주인에게 반환하거나 경찰관서에 제출하지 않고 오랜 기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인이 한 실수는 ✓법을 몰랐고(우리나라 법체계는 ‘법을 몰랐다’라는 이유를 죄가 없는 사유로 보지 않는다), ✓주운 물건을 빨리 경찰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나 후과(後果)가 너무 컸다. 한 번의 명절휴가비와 성과상여금 미지급, 징계벌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이 따랐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죄는 성립한다     



  생활 사례 ‘블랙카드 한우집 사건’의 주인공 길동이는 필자의 지인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렀다. 길동이가 저지른 죄는 무려 3가지이다. 3가지 죄가 성립하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자.


1. 길동이가 타인이 잃어버린(또는 흘린) 블랙카드를 길에서 주운 후 반환하지 않고 = 점유이탈물횡령죄 

2. 카드 소유자 승낙 없이 그 카드를 결제에 사용해서 =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죄

3. 음식 대금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 = 사기죄(남의 카드를 자신의 카드인 것처럼 제시하고 음식 대금 130만 원 결제가 이루어지게 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

     

  길동이 사례는 현실에서 매우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떨어진 카드를 주워 아무 생각 없이 결제하면 대부분 검거된다. 신용카드 결제 명세, 해당 가게를 비롯하여 곳곳에 설치된 CCTV, 피의자 이동 동선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대중교통 이용 등 담당 형사가 추적을 시작하면 그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피할 수 없다.   



남의 물건은 그 물건이 어디에 있든 손대지 말라.   



   견물생심은 욕망학적으로는 대단히 통찰력 있는 사자성어다. 그러나 인간이 욕망에만 충실하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초원에 있는 버펄로 사체는 먼저 물어가는 하이에나가 임자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사파리 초원과 약 10,300km 떨어져 있다. 의도치 않게 점유이탈물횡령죄를 범하는 사람과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을 위한 조언을 몇 개 하자.     


누가 바닥에 흘린 내 츄르 가져갔어 ....


[점유이탈물횡령죄 전과자 양산 방지 대책]



주운 물건은 경찰관서(지구대, 파출소) 방문 또는 112에 신고하여 제출하라.


  점유이탈물횡령죄는 남이 분실한 물건을 주워 반환하지 않고 ‘꿀꺽’하면 성립하는 범죄다. 형량은 강하지 않으나 범죄 이력이 범죄경력자료에 남는다. 소위 빨간 줄이 그어진다는 말이다.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주운 물건은 경찰에게 넘기자.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


  점유이탈물횡령죄와 절도죄는 물건을 다른 사람이 점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범인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간다는 행 형태는 똑같다. 그러나 형량은 천양지차다. 점유이탈물횡령죄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 벌금 또는 과료, 절도죄는 6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물건의 점유 여부는 법리적으로 복잡한 내용이다. 당신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가져갔어도 반드시 형량이 약한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진 않는. 물건의 소유자가 분실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그 물건을 찾으러 갈 예정이라면 바닥에 있는 물건이라도 절도죄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글로 읽으면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겠지만, 경찰서 조사실에서 느끼는 공기의 중량은 확실히 다르다.





[분실자의 대처]



물건을 분실했다면 먼저 잃어버린 장소로 가라.


  당신은 먼저 물건을 잃어버린 장소로 가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자. 물건이 없다면 잃어버린 장소 인근 지구대 또는 파출소에 연락하여 습득물 보관 여부를 물어보라. 그리고 ‘로스트112’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당신이 분실한 물건이 습득물로 공지되어 있는지도 확인하라.     





분실물의 행방을 추적하고 싶다면 고소 또는 112에 신고하자.


  ③을 이행하였으나 분실물을 찾을 수 없다면, 주변 CCTV를 열람하여 분실물을 가져간 사람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점유이탈물횡령죄 피해를 신고한다. CCTV 관리자는 수사관이 아닌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다른 사람이 촬영된 영상)를 보여주지 않는다. 수사관이 분실물을 가져간 사람을 추적하려면 당신이 경찰에 점유이탈물횡령 피해를 신고해야 한다.




먼저 줍는 사람은 임자가 아니다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놀란 점은 대다수 시민 성품이 매우 선하다는 사실이다(필자는 성선설 학파가 아니었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으면 바쁘게 가던 길을 멈추고 지구대에 방문하여 습득물을 신고하고 주인에게 찾아주길 당부한다. 그래서 필자는 글을 소수의 예외적 사람을 위해 작성했.


  다시 한번 강조한다. 먼저 줍는 사람은 임자가 아니라 물건의 소유자에게 그 물건을 반환해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기억하자.


  


[점유이탈물횡령죄 예방 핵심 요약]


  ✓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고 주운 물건은 경찰에게 제출하자.

  ✓ 물건을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린 장소를 확인하고 112에 신고.






CCTV 열람 Tip


  많은 CCTV 관리자가 개인정보주체의 CCTV 열람 요청을 기계적으로 거절하면서 ‘경찰이 와야 CCTV 열람이 가능하다’라고 답변한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 열람을 요청하면, CCTV 관리자는 개인정보주체가 해당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밤사이 누군가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길동이 차를 긁고 도망갔다. 길동이가 관리사무소장 허균에게 “내 차를 충격 후 도망간 차량이 있는지 궁금하오, CCTV를 보고 싶소”라고 말하며 CCTV 열람을 요청한다.


  

 이 경우 허균은 길동이 차량이 녹화된 영상을 길동이에게 보여줘야 한다. 만약 그 영상에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가 들어있을 경우 스티커나 메모지로 그 부분을 가리고 보여주면 된다. 경찰의 입회나 감독은 필요하지 않다.


  개인정보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 열람을 요청하였는데, 정당한 이유 없이 CCTV 관리자가 그 요청을 거부하거나 열람을 제한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제75조에 따라 과태료(600만 원~2,400만 원)가 부과된다. CCTV 관리자들이 법을 몰라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법률의 부지(不知)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억하자




이전 07화 의문의 문자 : 스미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