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남녀 1명 씩 있어서 이 글을 써봅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 문장에 홀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그것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가정이 앞선단 말이죠.
그런데 누가 우리를 만들었나요? 누가 우리가 태어난 의미, 삶의 의미를 만들고 정의했나요? 아니죠.
누가 만들어 놨으면 언젠가 어디선가 찾을 수 있겠지만 그거 절대 못 찾아요. 왜냐구요?
아무도 우리를, 우리가 살 의미를 안 만들어놨거든요.
그거 찾는거 아니라 만드는 거더라고요. 찾는다는 단어에 꽂히면 끝도 없이 헤메게 돼죠. 이런 걸 나는 잘 짜여진 문장의 저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이제 모든 문장을 의심하지요.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당신인데, 당신을 왜 찾나요? 어디서 찾을 수 있죠?
인간은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신적인 존재 같아요.
당신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눈을 감고 죽으면 당신의 죽음과 함께 온 우주가 같이 사라지는거잖아요.
자. 이제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싶어요? 그대로 자기를 만들면 돼요, 어떻게 살고 싶은데요? 그대로 살면 돼요.
꿈에 그리는 이상향은 인과관계에 따라 시간이 걸리겠지요. 라면 물도 안올렸는데 라면을 어떻게 먹어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서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어요.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이상향에 가까워지냐 멀어지냐가 인과관계로 또 조정되겠지요.
아! 그리고 이 세상에 옳은 선택은 없어요, 세상은 선택만으로 결정나는 도박도 아니고, 그래서 어떤 바보 같은 선택이든 그 선택을 옳게 만들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요. 선택 만큼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이게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에요.
결정론을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거대한 운명도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작은 선택들을 할 수 있지요, 우리의 작은 인생은 충분히 바꿀 수 있어요.
운명처럼 결정된 상황과 환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런 상황에 마음의 긍정과 부정도 우리의 선택이지요. 내가 나를 만들고, 내가 나의 의미를 만든다.
자신을 찾는 여정? 못 찾아요.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에요.
그럴듯한 소리가 세상에 만연해요. 그래서 중요한 시기에 인생을 헤매기도 하지요. 잘 생각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