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학습효과

보이지 않는다고 멈춘 것은 아니란다.

by 윤노엘

“엄마, 나 피아노 치기 싫어. 선생님이 너무 힘들게 시켜.”

나의 둘째 아들은 이런저런 핑계가 참 많은 아이다.

큰 아들은 듬직하고 끌어주는 대로 묵묵히 따라오는 편이라면 둘째는 영민하지만 잔꾀가 많고 약간은 고집대로 하는 경향들이 있다. 정말 그랬다.

어느 단계까지는 피아노를 쳐주면 좋으련만 꾀를 부리는 게 당장이라도 안치고 싶다는 내색을 한다.

보통 일주일에 3번 정도 가는 피아노 학원을 안 가겠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보통의 엄마,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참 많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안 가면 학원비도 줄고 엄마는 좋지,”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늘 끝을 못 보고 중간에 포기하고 말이야.”

우리 부모들은 가끔 아이를 생각하는 척하면서 쉽게 결론을 만들어버린다.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때는

‘나에게 한번 관심 좀 가져줘.’

‘나 힘들단 말이야.’

이런 뜻으로 받아들여주면 참 좋은데…….



특히나 아버님들은 이렇게 말씀하기도 하신다.

“애가 싫다는데 뭐 하러 시켜. 하고 싶은 거나 시켜줘.”

그럼 아이가 무엇을 간절히 하고 싶어 하는지 혹시 알고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물어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냥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무조건 시키지 말라고 하신다.

내 아들도 이렇게 말할 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들을 삼킬 때가 많았다.

사실 나도 영재교육을 시작하면서 무수히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내 생각대로 빨리 결론 내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너는 피아노에 자질이 없는 거로구나. 그럼 하지 마.”라고 ,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엄마의 감정을 숨겼다.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숨 고르기를 먼저 했다.

“그랬구나. 피아노 치기가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그럼 잠시 쉬어볼까?

그래도 지금까지 배운 게 있으니 끊지는 말고 일주일에 한 번만 쳐보는 건 어떨까? “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결론은 아이가 내리도록 잠시 기다려주었다.

아들은 투덜투덜 불편한 감정들과 힘들다는 핑계들을 이야기하지만 엄마인 나는 꾹꾹 눌러 담으며 감정을 노출하지 않고 공감의 제스처로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불평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그다음은 자신이 어떻게 할지 방향을 결정한다.

“그럼 나 일주일에 딱 한 번만 피아노 칠 거야.”

아주 반가운 결론을 내려서 말한다.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도 조금씩 쳐보겠다고 하니.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지금보다는 덜 힘들겠네. 조정해보자꾸나.”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들은 초고속으로 체르니를 뗄 때 우리 아들은 쉬엄쉬엄 놀아가며 체르니와 하농을 치더니 남들은 모차르트 곡 칠 때 뉴에이지와 세미 클래식 곡만을 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공자 될 건 아니니 너의 인생이 고달플 때 벗이 되어줄 음악 하나는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피아노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실력은 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피아노를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둘째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부터 피아노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것도 혼자 악보 뽑고 혼자 연습해서 곡을 완성하며 성취감을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피아노를 핸드폰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남들 한참 공부하는 고2 여름 방학 때 노래를 듣고 악보를 그려보고 싶다고 한다.

물론 전공할 건 아니지만 궁금할 때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선생님을 만났고 아주 재미있게 청음으로 듣고 악보를 그려내는 방법, 반주하는 방법 , 곡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아들은 자신이 그린 악보집을 보물처럼 간직한다.

평생 가져갈 친구 같은 음악을 만난 것 같다. 내 바람이 이루어 짐을 느꼈다.


처음에 힘들다고 내려놓고 싶어 할 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피아노 사랑은 없지 않았을까? 조금 더디지만 방법을 바꾼 것이 피아노를 끊지 않고 꾸준히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실력이 되었다.

큰 아들은 엄마의 기대처럼 영재로 자라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우뇌형 아들은 수학을 무지 싫어한다는 것을 초등학교 2학년 때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너무나 해맑게 나에게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는데 엄마인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엄마, 나 오늘 수학 시간에 뒤에 서서 벌섰어.”

“왜? 우리 아들이 벌을 섰을까?”

“응, 수학책 안 갖고 온 사람 뒤로 나가라고 했는데 내가 나갔어,”

“왜? 책을 안 가져갔던 거야?”

“아니, 가방 안에 있는데 공부하기 싫어서 없다고 했어.”

으앙. 이게 뭐지?

초등학교 2학년 수학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왜 수학이 싫은 거지?

아!~ 나는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그때부터 아들에게 수학 자신감 붙이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일단 수학 관련 교구가 있으면 무조건 아들에게 해 볼 수 있도록 제공을 했다.

영재교육원에는 교구가 참 많았다. 그 교구들은 아이들에게 수학을 놀이로 가르칠 수 있는 재미있는 교수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수학경시대회에 일 년에 두 번 나가도록 응원했다.

자신 없어하던 아들이지만 한번 나가서 금메달과 상을 받아오고부터는 조금씩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초등수학이 어려우면 얼마나 어려울까? 아들과 문제를 풀고 응원을 하면서 실력 다지기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초등 사고력 수학과정을 배우고 반을 구성해서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가 내 아들만 앉혀놓고 가르치면 엄마의 욕심이 되지만 한 반을 구성해서 함께 수업을 하다 보면 구성원의 일원으로 아들은 쉽게 재밌게 잘 따라왔다. 그리고 교사로서 아들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 아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느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들 덕분에 초등 사고력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초등 , 중등까지 엄마와 함께 만들어가는 수학 성적이었다면 고등학교부터는 달랐다.

난이도가 높아진 고등수학을 언어 이해력과 사고력 수학이 힘이 되었나 보다.

아들은 수능 성적 수학 1등급을 찍고 졸업을 하였다.

그것도 학교 공부만으로…….


우리는 산을 오르는 등산처럼 아이들의 성장 속에 계단과 같은 성장곡선이 만들어짐을 이해해야만 한다.

평지를 걷는 것처럼 밋밋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성큼 한 계단 뛰어오르는 성장을 해내는 아이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밋밋하게 재미없게 걷다가 시들해졌다고 힘들어졌다고 포기하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버리면 그다음 계단은 절대 점프해서 올라갈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냥 그 선에서 머물다 힘들게 내려놓는 아니면 빠르게 포기하는 인성의 습관을 갖게 된다.

우리는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같은 감정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 경청해주어야만 한다.

아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다시 용기 내서 해볼 수 있게 응원하고 끌어주어야만 한다.

그런 부모의 노력과 아이들 스스로의 노력이 합쳐졌을 때 점프해서 올라가는 하나의 계단이 완성이 된다.

절대 포기는 없다.

왜냐하면 내 아이니깐.

단 , 힘들다면 돌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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