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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Nov 27. 2020

펜트하우스

second house의 꿈을 이루다

월요병의 피곤함을 소소한 기다림으로 채워주는 드라마 하나를 발견했다.

최근에 방영을 시작한 펜트하우스 드라마이다.


결혼 후 남편과 나는 TV 없는 거실에 동의를 하고 20년 이상 TV를 보지 않았다. 

아들의 수능 일주일 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제는 사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의견을 모았다. 생애 첫 TV를 모셔왔고 남편은 골프채널이나 스포츠를 즐겨보았다.


 TV 보는 것이 습관이 안된 나는 거의 전원을 켜지 않고 지내다가 하나의 드라마에 꽂히면 종영될 때까지 그 드라마만 보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꽂힌 드라마가 바로 '팬트하우스'이다. 코로나로 외출도 줄어들었고 밤은 길어졌고 지루함을 잊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본의 아니게 아주 빠져들다시피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류층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실상을 보는 즐거움과 비극적 상황과 운명에 맞선 반전의 복수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한 간접경험과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비극 경연대회가 있었다고 한다. 

풍요를 기원하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일반 시민들은 세상 슬픈 비극들을 감상하며 그 우열을 나누고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하니 인간은 그 오래전부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화하는 기능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는 생각을 가져본다. 관찰 예능처럼 말이다.     


드라마의 영향이라고 꼭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가을부터 나는 한 두 곳씩 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사실은 땅도 보고 다녔다. 머릿속에 상상만 하던  꿈같은 집을 지어볼까 싶기도 해서 말이다. 

인생은 생각처럼 말처럼 살아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생각처럼 말처럼 살아가도록 스스로 그 길을 안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자의 소요유에서 인생의 전반전 후반전의 뜻을 헤아리다가  내 인생에도 풍요롭고 아름다운 후반전을 반드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인생의 전반전을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위한 직장의 개념으로 살아왔다면 

인생의 후반전은 가치의 풍요를 담고 싶은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1인 지식창업을 꿈꾸어 왔다. 

그 꿈을 담아낼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고 누구든지 오고 싶은 곳, 일상과 붙어 있지만 일상을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주택도 건물도 땅도 보고 다니던 발걸음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멈춰 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팬트하우스를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나도 모르게 나를 합리화시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끼워 맞추기 식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때문이라고. 

‘내가 빠진 드라마 때문이야. 

드라마의 잔상 때문이야.’   

  

평생을 아파트 공간에서 살아왔다.

직장은 콘크리트 사각형의 건물 속에 존재했다. 

한참 일을 많이 벌이고 활동할 때에는 수천만 원의 직원 급여와 임대료를 맞추는 것이 매달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한 달 한 달이 달리기 하는 것처럼 숨 가쁘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래서 다시는 임대료 걱정, 직원들의 급여 걱정 안 하는 나만의 공간, 나만의 일이 갖고 싶다는 것이 무의식 속에 꽉 박혀 있었다.


팬트하우스의 사전적 의미는 옥상가옥이다. 


건물 꼭대기층에 다락방을 겸해 지붕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 꼭대기층, 그래서 천고가 높고 탁 트인 전망에 점점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부합되어 현대에는 부의 상징처럼 드라마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드라마의 100층 팬트층은 아니지만 나의 눈높이에 이만하면 최고의 세컨드 하우스가 되고도 남았다. 


아파트보다 높은 천고가 좋았고 세로로 기다란 창문으로 병풍처럼 둘러 쳐진 산세가 파란 하늘과 맞닿은 곳에 시선이 머무는 것이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콘셉트는 먹고 살기 위한 생업의 기술직이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풍요로운 사유의 삶으로 채우고 싶은 것들이기에 발품 팔며 다닌 다른 모든 곳을 제치고 팬트하우스로 결정을 한 것이다.


실제 입주공간 1층 모습


사실 결정을 하기까지는 남편의 외조가 한몫을 했다. 

불안정한 부동산 정책에 종부세 폭탄을 생각하면 구매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으니 조용히 남편이 결정을 도와주었다. 


두 번사는 인생 아니니 하고 싶은 것 하라고. 


25년을 살다 보니 남편은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내 속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 같다. 

내 마음을 호흡만으로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숨결보다 가까이 있는 그대.

남편의 결정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음날 계약을 하러 갔고 첫 단추를 기분 좋게 꿰어준 남편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웠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2021년 그리고 결혼 25주년 기념일이 돌아온다. 

철없이 살아왔던 과거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내조를 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으로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늘 나보다 더 나를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나의 반쪽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아내는 집안에 있는 태양이라고 한다. 

그 태양이 환하게 빛날 수 있도록 나를 갈고닦아 집안에 늘 따뜻한 기운이 가득 차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며 사랑스러운 팬트하우스를 갖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귀한 공간을 통해서 삶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고 사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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