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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목적이 있는 쉼 디자인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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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솔트다움 Jan 27. 2024

드디어, 쉼표

‘잠깐만...’

무엇이 쉼에 다가가지 못하게 했던 거야?

멈출 수 없었다. 잠시라도 멈추기 위해서는 나의 눈에, 아니 그보다는 남의 눈에도 가당한 핑계가 필요했고 핑계가 생긴다 해도 그 핑계들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라도 멈추면 결국은 저 뒤로 밀려나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걸어야 지금 선 자리를 유지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쉬는 건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무 계획 없는 일상이 나에겐 3일도 버거웠고 4일째에는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쉬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도. 난 그저 그런 인간이라 생각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만 하는 아빠를 닮은 것이라고. 별게 다 유전 탓이다.

퇴사를 했고 난 더 쉬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일 생각을 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잠시 머리와 마음을 쉬었지만 일이 몰려드는 시기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생각이 딴 데 가 있기 일쑤였다. 하나가 끝나고 다음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한 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동시에 생각하고 생각한 모든 것을 실행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것이 과연 건강한 상황인가 생각하면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녹록지 않았지만 조직을 벗어난 이후에도 일 더미는 더하면 더했지 줄지를 않는다.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도 없지만 그건 네 일이 아니다 잘라내는 사람도 없다. 일을 처리하면 처리할수록 일의 양이 지수 함수를 그리며 많아지기만 한다. 내 안에서 더 많은 생각들이 샘솟고 외부에서 제안도 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돌볼 여력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는 사이 피로감은 쌓여갔다. 마음의 피로감도 육체적인 피로감도 쌓이고 쌓여 마음 한 구석이 시큰 하니 파르르 떨렸다. 눈 좀 붙이겠다고 잠시 누웠다가도 너무 늘어질까 싶어 이내 일어나 버리니 눕기 전보다 더 피곤하기만 했다.

다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일 년 내내 했다. 하지만 그 뒤의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다 그만 두면 뭐 하지? 아무것도 안 하면 행복할까? 바빴지만 행복했고 가끔은 성취감에 자존감도 그득하게 들어차 마음 뿌듯했는데 말이다. 일을 하면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맛본 적이 없다면 모를까 아는 맛을 맛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래서 일 뒤에 중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구나 싶을 만큼.

그래도 난 일보다는 인간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치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삶의 가치를 챙기는 것에 불평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에는 일에 ‘적당히’라는 것은 없었다. 프리랜서로 내 일의 영역이 명확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적당히’는 안 하는 것만 못한 것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럴듯한 취미를 만들어 인생을 즐기는 것이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없어질까 노심초사 손에서 놓지 못했던 것은 일이 아닌 나의 존재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계속해서 다음 또 다음 할 일을 찾고 점검하고 완성해서 넘기던 날들. 내가 원한 것은 사회와 조직에서 내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디 소속으로 나를 설명하던 나의 일로 나를 설명하든, 어떻게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했으니까. 힘들어도 그렇게 확인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가 바스러져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느낌이 들까 봐 말이다.

사회적 존재로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 하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에 더하여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며 살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러한 행복에 빠져있었다. 목표를 세우고 이룬 후의 고요함을 즐기기. 그 맛이 꽤나 중독적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쉼을 갖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쉼표를 결심함. 갑자기? 왜?

살고 싶어졌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누리고 살고 싶어졌다.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무렵엔 모든 것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나의 성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성취 까지도 그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삶을 가치 있게 살아내야 하는데 힘을 낼 동력이 고갈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왜 안 쉬어?”

전날 밤 잠다운 잠을 자지 못해서 눈이 따끔거렸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꽤나 피곤해 보이고, 모든 일정이 취소되어 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찾아 종종 거리자 신랑이 나에게 왜 안 쉬느냐고 물은 것이다. 피곤하다고 하면서 왜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냐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급한 일,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모두 있으니까.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시간에 지나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텐데 그럼 난 의식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쉼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에라이...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쉼 없는 일의 연속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려보자. 잘 쉬는 방법을 찾아보자. 쉼의 효과와 그로 인한 변화를 느껴보자. 쉼을 알기 전과 후는 분명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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