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여자
첫 아이를 2015년에 낳았다. 그때만 해도 저출산 이야기는 사회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문제였다. 언론에서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지만 사실 집 밖에 나가면 아이들은 어디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답게 아이들이 또 많았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은 앞 다투어 이 도시로 이사를 왔다. 이 시에서는 배짱 좋게 출산지원금도 넉넉히 주지 않았다. 가만있어도 인구가 유입되는 데 시에서는 아쉬울 게 없었다.
그 이후 몇 년간 근처 광역시에 살다가 아이들이 좀 자라면서 다시 이 도시로 이사를 왔다. 아이 유치원을 보내려니 유치원이 모자란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도에서는 급하게 유치원을 설립하고자 계획하고,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급하게 반을 증설했다. 유래없는 대혼란 끝에 아이들은 어떻게든 유치원생이 되었다.
알고 보니 2015년에 정점을 찍은 출산율이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1,2년 뒤 계획했던 공립유치원이 지어지고, 병설유치원도 시설을 갖추어 규모를 늘렸지만 입학할 아이들은 점점 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모차 끌고 다니는 아기 엄마가 희귀했다. 아니 아기 보기가 힘들다는 말이 더 맞겠다. 사실 나는 아이를 좀 키웠으니 이제 막 자라는 아기들에는 크게 관심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저출산문제가 피부에 와닿을 즈음, 실제 우리나라 출산율이 1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이었다. 2명이 결혼하는 데 1명도 채 낳지 않는 현실. 그제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으랴 싶었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할 기회가 내게 찾아 오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꿈에도.
저출산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했던 내가 갑작스레 애국자가 되어 있었다. 자의라고는 1도 없이 애국자가 되어 버린 나. 처음엔 꽤 당혹스러웠지만 그 당혹스러움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만큼 지금의 내 삶은 세 번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한 행복감이 가득하다.
이런 삶을 꿈꾸며 혹시나 문을 두드려 보는 엄마가 있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임신에 혹은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엄마가 되길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이 삶도 꽤 괜찮은 삶이라는 결론을 먼저 던져 본다. 인생의 여러 길 중에 꼭 가 볼 만한 길이라고 감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