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드로잉 2
씨발년.
승수는 여자가 너무 사치스러웠다고 생각했다. 계약직 주제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셔. 그런 여자와 만나면 인생 망하지! 승수는 200원만 넣으면 나오는 자판기 커피대신 20배나 비싼 커피를 마시던 여자를 떠올렸다.
승수는 여자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승수가 즐겨보는 <삼천 원 밥상>이라는 유튜브 속 여자는 단돈 3천 원으로 제철 야채로 장을 봐서 영수증을 보여주며 10분 만에 뚝딱 밥상을 차렸다.
여자에게 오늘은 집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자고도 했다. 이 여자는 신중하게 눈썹을 모았다. 지중해식 샐러드를 해 먹을까,라고 하더니 유기농 매장에 들러 한 봉지에 팔천 원이나 하는 토마토를 아무런 고민 없이 장바구니 담았다. 더 기가 막혔던 일은 1만 8천 원을 주고 발사믹 소스를 하나 집어 들더니 오빠, 집에 혹시 스페인 산 올리브 오일은 있어?라고 물었다. 승수는 '없어'라고 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마침, 다 먹었는데, 한 병 사라고 말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병에 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중 가장 비싼 걸 장바구니에 넣었다. 3만 5천 원이었다. 흰 후추도 사고, 시어 빠진 레몬도 샀다. 그날 집에서 요리를 해준다고 설치던 여자는 승수가 싫어하는 싸구려 야채를 소고기 한 근 보다 더 비싸게 만들었다. 자긴 이런 거 못 먹어 봤지?라는 표정으로 그녀는 능숙하고 빠르게 값싼 야채에 터무니없이 값비싼 소스를 뿌렸다.
사실, 더 신경 쓰인 건, 그릇이었다. 승수는 커다란 접시 하나에 반찬과 밥을 담아 먹었다. 그런데 여자는 소스 접시를 내놓고 같이 먹어도 될 반찬을 개인 접시에 두 개씩 따로 담았다. 이게 일본식 상차림이라고 말하며 이런 거 처음 봐?라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승수는 처음 보지만 응 아니야,라고 말하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집이라고 징그러운 짓은 하지 마! 그녀는 돌멩이처럼 그에게 단단한 말을 툭 던졌다. 승수는 물러났다.
승수의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이 저녁 한 끼에 다 나왔다. 요리용 냄비도 여러 개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칼도 야채, 고기용을 따로 사용했다. 냄비째 부으면 될 것도 소스용 국자와 수프용 국자를 요리마다 다 따로 사용했다. 설거지 통에 그릇은 가득 찼고, 주방은 엉망이 되었다. 여자는 내가 요리를 했으니 설거지는 당신이 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승수는 못마땅했지만 저녁 한 끼만 해도 나가서 먹으면 10만 원은 넘었을 텐데, 이 정도면 괜찮았어, 올리브 오일은 또 먹으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싱크대에 섰다. 아웃백에서 부메랑 멤버십가입하고 쿠폰까지 썼으면! 더 저렴하게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삼천 원 밥상이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지중해식 샐러드를 만들다니! 마트에서 장본 가격과 소고기 값을 계산하고 또 계산하며 물로 헹군 그릇을 싱크대의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물기를 빼려면 그릇을 엎어야지!" 여자의 빽! 소리치는 날카로운 음성에 승수는 접시를 놓쳤고, 그릇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승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씨발, 조용히 좀 해!"라고 소리쳤다.
놀란 여자는 승수에게 인사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스타벅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던 여자와 승수는 그렇게 헤어졌다.
여자와 헤어진 다음 날, 나 승수 옆으로 꼭 끼는 네이비 스커트를 입은, 낯선 여자가 커다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지나갔다. 좋은데? 승수는 여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집에는 어제 사놓은 올리브 오일이 2/3나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