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기분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진료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2주 만에 가벼워졌고, 긴장을 주는 상황만 아니라면 의자에 앉아 있어도 버틸 수 있었다. 비 갠 하늘은 맑고 구름은 부지런히 하늘을 달렸다. 순간적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지만 모자를 잡으며 웃어넘길 날씨였다. 도수치료를 받고 병원 근처 단골 두부집에서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걷다가 산책하는 고양이를 만나 한참을 바라보다가 카페로 향했다. 밤 파이를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때마침 흘러나온 음악이 좋아서 카운터에서 펜 한 자루를 빌렸다. 이 기분을 남기고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이다.
사실, 나 자주 불안해.
불안과 외로움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었다. 오랫동안 꽁꽁 숨긴 감정을 친구에게 털어놨다. 말보다 글이 편해서 고민이나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려면 긴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여전히 불안은 곁에 있다. 불안하지만 행복할 수 있고, 불안하지만 늘 사랑하고 있다. 불안해도 타인의 호의에 감사할 수 있으며 기쁘고 신나는 일에 하하 호호 크게 웃을 수 있다. 불안도 하나의 감정일 뿐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덕분이다.
감정에 좋고 나쁨이란 없다. 기쁨, 절망, 슬픔 모두 나를 찾아오는 손님일 뿐이다. 어떤 감정이 불청객처럼 찾아오다라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고 싶다. 휘둘리지 않고 매몰되지 않고, 다채로운 감정이 주는 크고 작은 깨달음이 한 편의 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