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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삶 21

주려는 자 안 받으려는 자

엄마 제가 모시고 갈게요
아들 바쁘고 힘들어서 엄마 혼자 가면 돼

아들 엄마가 약사님 전화 바꿔 줄 테니까 병원 이름 좀 알려줘

엄마는 죽는 게 낫겠다. 병원에 왔는데 동사무소 서류를 깜빡했어
나 그냥 집에 가련다.


제발 죽는다는 소리 좀 그만해요

엄마 제가 모시러 갈 테니 병원에 계셔요.

다시 생각해도 어차피 죽을 거 오지 마. 수술 안 해

엄마랑 집 근처에 있는 남도항아리 가서 점심 먹고 싶어서 그래요. 생각만 해도 군침이 싹 도네

아들 병원에서 검사 중이니까 할 거 다 하고 천천히와 천천히와

아들이 데리러 와주니 든든하고 너무 좋다


수술 예약 빨리 해

알았어 3차 병원에 예약해서 진료일정 잡을게
엄마 내일 2시 30분까지 오래

엄마가 죽을래도 죽을힘이 는데 무슨 수술이야
내일은 절대 못 가

알았어 예약취소할게

916번 버스가 거기 가나

어디요

거기 거기

아 3차 병원

빨리 알아봐


나는 버스를 안타서 잘 몰라요


빨리 알아봐

나 지금 뭐해요 내가 항상 한가한 사람이 아니잖아

엄마 내가 모셔다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아니여 엄마가 혼자 갈 거야 그럼 택시라도 타요

됐어

택시비 아까워 너한테 부담되는 거 싫어 나 죽으면 송장이나 치워

5살짜리가 자기 혼자 병원에 버스 타고 간다고 우기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또 나에게 sos를 칠 텐데

내가 주는 걸 고맙게 받아주는 게 더 나는 좋은데

뭐가 부담이라는 건지 또 뭐가 바쁘다는 건지

내가 할만해서 한다고 한 건데 시간이 되니까 되는 건데

왜 나도 아닌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건지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겁다


조금만 친절하게 말할걸


차라리 전화를 끊고 감정이 정리 됐을 때  할 걸


다른 집도 다 비슷하겠지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후회의 무거움이 마음을 짓이긴다

 고마울 일을 미안하게 만드는지

알다가도 알겠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결국 마무리는 지긋지긋한 나 죽으면 내 송장 치워라는 소리

그냥 감사하게 받아주면 안 되는 걸까
그냥 모른 척 누리면 안 되는 걸까

가장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의 호의는 부담스럽고 미안해하는 엄마

엄마 마음은 다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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