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주워 담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하며 그 안에서 울고, 분노하고, 결국에는 웃을 수 있었다.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만큼 마음도 완전히 회복되어서,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으로 살고 있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마다 안색이 좋아졌다는 말을 내게 건넬 정도로. 원래 같았으면 좀 더 빨리 상태가 나아졌을 텐데 몇몇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지난 기억을 애써 들추어 보고 그때의 감정을 복기하느라 더 오래 슬픔과 분노 속에 머물러야 했다. 속도는 더뎠지만, 완전히 회복되었으니 그거면 됐다. 정말이지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준다는 말을 체감했던 한 해였다. 그 뻔한 위로만을 믿게 되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서 글 쓰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이사를 가고, 직장을 옮기고, 멀리 여행도 다니고, 뜨개나 드럼 같은 새로운 취미에도 도전해 보고, 또 다른 무언가에 마음을 쏟으면서 내 삶을 환기했다. 올해만큼 알차게 보낸 때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의미 있고 재미있는 한 해를 보냈다. 이처럼 스스로의 삶을 되찾으려 노력한 부분도 있지만, 좋아하는 친구들,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덕분도 크다.
최근에 읽은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237페이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 무렵 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도와주면 고통이 옅게 번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기의 중심에 선 사람에게는 가족과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를 돕는 이들에게도 친구와 배우자와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실 이전까지 나는 고작 연애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크게 뒤흔드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헤어졌다고 하면 그의 아픔이 쉬이 공감되지 않았고, 그저 의례적으로 눈썹을 팔 자(八)로 만들며 토닥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나에게도 ‘이별’이라는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별이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 내가 그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곁에 있어준 친구들, 한걸음에 달려와 다독여 준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더욱 처참히 무너졌을 테니까.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찬, 희망 없는 암흑 속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을 테니까. 내가 사랑하는 누구라도 그런 곳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아니, 어떤 여자라도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 바람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유독 여자들이 연애에 휘둘리는 몇 가지 사회 구조적 원인을 이야기하며 비판했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떤 순간이든 항상 나 자신을 1순위로 둬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당연히, 무조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를 버리면서까지 이어가야 하는 관계라면, 계속해서 내가 손해를 보거나 희생해야만 제대로 굴러가야 하는 관계라면 그 인연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당장은 힘들더라도 길게 보면 끊어내는 게 맞다. 나를 아껴 주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기에도 삶은 짧으니까.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서도 앞으로도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단언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당장은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지만,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관성처럼 또다시 그 사람을 나보다 우선순위에 두려고 할 수도 있다. 신념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억지로 흐린눈을 해가며 나 자신을 지우려 할 수도 있다.
이 글은 그러지 않기 위해서, 그러지 말라고,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보내는 긴 편지다. 동시에 사랑 안에서 자신을 잃었던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하다. 부디 우리 모두 자신을 지우는 사랑 대신, 스스로를 보다 선명하게 비추는 사랑을 선택하기를.
이제 나는 연애에 돌아버리는 여자가 아니라, 사랑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게 이번 이별을 통해 배운 나를 존중하는 방법이자 사랑의 가장 단단한 형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