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할아버지의 연체된 육아 분담

인생은 육아 총량제, 30년 만에 돌아온 숙제

by 해림

가족 단톡방에 손녀의 등원 사진이 올라왔다. 핑크색 외투에 토끼 헤어핀을 꽂고 유치원 가방을 멘 모습. 가족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 하나, 오늘도 아이가 울지 않고 무사히 등원했느냐다.


요즘 남편은 6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아침마다 손녀를 유치원 차에 태워주고 출근하는 '등원 도우미' 역할이다. 손녀의 기분은 매일 아침 롤러코스터를 탄다. 며칠 전엔 방 불을 끄고 누워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며 완강히 버텼단다. 당황한 남편은 결국 큰딸과 페이스톡을 연결했고, 오늘만 애착 인형을 가져가도 좋다는 딸의 긴급 처방 덕에 겨우 등원 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엔 아빠들이 새벽같이 회사로 달려가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남편 역시 딸들을 등원시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환갑을 훌쩍 넘겨 딸자식 대신 손녀를 등원시키는 남편을 보니, 세상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역시 '총량제'다. 젊은 시절 나 혼자 감당했던 고생을 이제야 나눠지는 남편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선 "거봐, 당신도 고생 좀 해봐야지" 하는 고소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지만 손녀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큰딸의 판박이라, 남편의 앞날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과거 큰딸과 친정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오른다. 친정어머니가 현직에 계실 때였다. 큰딸은 편도가 약해 수시로 열이 났지만, 봐줄 사람이 없으니 해열제를 먹여 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출근하면, 어머니가 아이를 등원시키고 학교로 향하셨다.


딸은 아픈 날이면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고, 아프지 않은 날에도 선생님이 못생겼다느니 장난감을 못 찾겠다느니 온갖 이유를 대며 떼를 썼다. 참다못한 어머니는 주변의 눈총을 뒤로하고 손녀를 학교로 데리고 출근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큰딸은 초등학교 언니, 오빠들 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하루를 보내고 할머니와 함께 하교하곤 했다.


나 역시 매일 아침 아이들 눈치를 살피고 감언이설로 꼬셔가며 살얼음판을 걷듯 출근했었다. 유독 적응이 힘들었던 작은딸을 데리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옮겨 다니며 "제발 여기서는 무사히"라고 기도하던 마음이 지금도 선명하다.


올해 나는 고등학교 교감이라는 중책을 벗고 교장이 되었다. 방과 후의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 덕에 요즘은 자발적으로 딸의 집을 찾는다. 부탁받은 일은 아니지만, 달려가 작은손녀를 업어주고 큰손녀 비위를 맞추며 놀아주다 딸이 귀가하면 후다닥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딸의 집에 가면 사위는 아기를 앞에 매달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큰아이 비위 맞추랴, 아기 달래랴 북 치고 장구 치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사위는 라구 파스타를 만들겠다며 주방을 누빈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옛날 내 신세와 겹쳐 보여 마음이 짠해진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어엿한 의사 선생님이지만, 장모인 내 눈에는 그저 친정엄마가 딸을 보듯 사위가 가엽게만 느껴진다.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주방에서 분투하는 사위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이 기묘하고도 따뜻한 '시추에이션'이 바로 내가 마주한 생의 새로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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