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선은 왜 자꾸 아래로만 향할까
"아이는 아빠랑 내가 봐줄 테니,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너라."
밑반찬 몇 가지를 챙겨 큰딸 집 문을 열자마자 울음 섞인 소동이 한창이다. 손녀는 소파에서 떨어졌는지 눈 주위가 발갛게 부어올라 울고 있고, 임신 후반기에 접어든 딸은 노랗게 뜬 얼굴로 아이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다. 사위 역시 측은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내와 딸 챙기랴, 끼니 해 먹이랴 고군분투하느라 그 잘생긴 얼굴이 반쪽이 되어간다.
오후에는 내가 아이를 볼 테니 백화점 쇼핑도 하고 근사한 저녁도 먹고 오라고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사실 어제 목 디스크 치료로 신경 주사를 여덟 대나 맞아 온몸이 성치 않았지만, 육아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딸 부부에게 단 몇 시간이라도 숨구멍을 틔워주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손녀를 앉혀두고 목청껏 책을 읽어주었다. 그러고는 아파트 광장으로 나가 씽씽카를 타고 종횡무진하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집에 돌아와서는 과일을 먹이고, 전직 영어 교사 할머니의 사명감을 불태우며 영어 프로그램까지 함께 시청했다. 틈틈이 주방으로 달려가 채끝살을 굽고 다진 당근을 듬뿍 넣은 계란말이를 준비하는 사이, 할머니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덧 외식을 마친 딸 부부가 도착했다. 한결 편안해진 둘의 표정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느껴져 마음이 뿌듯해지려는 찰나, 딸이 손녀를 와락 안으며 속삭인다. "우리 딸, 잠시 안 보다가 보니까 더 예쁘고 사랑스럽네!"
입가에 미소가 번진 채 제 새끼만 물고 빠는 딸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저런 고슴도치 같으니라고. 온종일 북 치고 장구 치며 수고한 엄마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나 역시 제 새끼만 눈에 보이는 건 매한가지라는 것을. 내 눈에는 손녀보다, 그 손녀를 안고 있는 내 딸의 지친 안색이 먼저 들어온다. 손녀를 보는 척하면서도 내 눈길은 자꾸만 딸의 얼굴에 머문다.
철부지 같던 딸이 제 자식 앞에서는 지치고 힘들어도 절대 화를 내거나 찡그리지 않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소아과 레지던트 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육아 전문가다운 도도함마저 느껴진다. 물론 내가 없을 때도 저렇게 한결같을지는 알 길 없지만 말이다.
문득 예전 시할머니께서 "너는 애들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냐"며 신기해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후 독해지고 포악해졌던 나의 '진짜 육아'를 보지 못하신 게 천만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그 모든 악다구니도 결국 초보 엄마가 제 새끼를 지키려 했던 절박한 발버둥이었음을, 이제는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다.
내 새끼 귀한 줄만 아는 딸을 보며, 그 딸이 귀해 몸부림치는 나를 본다. 사랑은 그렇게 아래로만 흐르며 세상을 버티게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