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정말 백해무익할까?

독박 육아의 기억을 넘어, 세대를 이어 흐르는 '첫째'들의 연대기

by 해림

"엄마, 안아줘요." "안 돼. 엄마는 지금 배가 나와서 서 있을 때는 너를 안아줄 수 없어."

집 현관은 손녀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임신 5개월, 제법 배가 나온 큰딸은 감기까지 걸려 기운이 역력히 없었지만, 떼를 쓰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끈기 있게 설득했다.

"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하지만 배가 나와서 앉아서만 안아줄 수 있어. 울지 마, 아가. 우는 아기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단다."


딸은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번도 더 읊조리며 아이를 달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서른 살을 떠올렸다. 나 역시 '독박 육아'와 '독박 임신' 속에 둘째를 가졌었다. 배를 부여잡고 출근하던 길, 당시 큰딸은 유독 자주 아팠고 사소한 일로 고집을 피웠다.


둘째를 출산하고 돌아오던 날, 나는 내 품의 전부였던 첫째를 보고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저 아이가 저렇게 컸었나?'

갓 태어난 동생 옆에서 다섯 살 딸은 한순간에 '덩치 큰 언니'가 되어야 했다. 온 가족의 관심을 나눠 가져야 하고, 고집을 피워서도 안 되는 존재. 세상에 나온 지 고작 4년뿐인 어린 영혼이 느꼈을 그 외로움을, 그때의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잘 먹이고 입히면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서른이 넘어서야 뒤늦게 뽀뽀하며 사랑한다 말해 보았지만, 아이들은 질색하며 어색해했다.

하지만 내 딸은 달랐다. 본인이 '첫째'였던 결핍 때문인지, 아이의 마음을 끊임없이 다독이고 수시로 사랑을 고백한다.


언젠가 누군가 큰딸에게 물었다. "저렇게 예쁘고 훌륭한 검사 동생이 있어서 정말 든든하고 좋겠네?"

그러자 큰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누가 뭐래도 첫째에게 동생은 '백해무익'입니다." 그 단호하고도 엉뚱한 대답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두 딸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피붙이이자 단짝이다. 심지어 각자의 남편들끼리도 결혼 전부터 절친했던 터라, 두 자매의 유대는 그 누구보다 끈끈하고 견고하다.

하지만 첫아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생이란 근본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고 여차하면 부모 대신 돌보기까지 해야 하는 성가신 존재임이 틀림없다. 딸의 '백해무익'이라는 선언은 그 지독하고도 외로운 첫째의 운명을 함축한 표현이었으리라.


그런데 이토록 단호하게 '동생 무용론'을 주장하던 큰딸이, 이제는 제 아이를 위해 둘째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기어이 동생을 가졌다. 이쯤 되면 '백해무익'이라는 말은 취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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