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서 경기도 양주 옥정신도시로 이사했다
경북 청송에서 1991년에 서울로 왔으니, 2024년은 서울 입성 33년이 되는 해다. 그렇게 둥지를 턴 강북구 수유동은 91년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집값도 임대료도 싼 동네 중 하나다. 나는 서울에서 늦깎기로 하위직 공무원에 입문했다. 태생이 흙수저라 공무원에 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출세라 생각했지만, 인간의 무한 욕심이 내게도 잠재해 있었던지 꿈틀거렸다. 신분 상승은 타고난 재능이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둥거려 보았지만 재능도 노력도 미치지 못한 나의 욕심은 찻잔 속 잔바람에 그쳤다.
무슨 일에 종사하든, 수입이 얼마이든,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기본이다. 기본을 거스르지 않으려다 보니 미래를 위한 저축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초근목피의 삶에 다름없는 하위직 공무원으로 작은 보금자리 마련도 뼈를 깎는 절약이 필요했다.
어느 유명 부동산 전문가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첫발을 디딘 곳에서 다른 동네로 옮기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그 동네를 고향처럼 사수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현 거주지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지역 또는 주택으로 갈아 타야만 부동산으로 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동안의 부동산 흐름을 추적해 보면 그 전문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몰라서 안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쥐꼬리 봉급으로 먹고사는 일도 버거운 마당에 저축하여 좀 더 나은 동네로 이사를 간다고! 말처럼 쉽지 않다. 부동산은 용도가 어떤 것이든 적어도 수 천만 원에서 수 억 원이 필요하다. 그 큰돈을 하위직 공무원이나 월급자가 어디서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이사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여태껏 한 발자국도 강북구 수유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강북구 수유동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인정 넘치는 동네인 것은 맞지만, 부를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는 미지수다. 분명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고, 실제 벗어난 사람도 많다는 점에서.
퇴직 후 빌라에 준하는 낡은 아파트에 의지한 채 고향같이 낯익은 수유동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은 사이라는 공간 확보가 하늘의 별따기다. 넉넉한 사이라는 공간은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여유도 갖게 해 준다. 건물은 한 뼘의 땅도 아깝다는 듯 간극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은 사람 사이도 밀착되어 시비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강북구 수유동이라 해도 명색이 서울인지라 주거비용이 만만하지 않은데 백수가 깔고 앉아 있기엔 비효율적이란 생각이었다. 퇴직자가 굳이 서울 거주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듯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언제부터인가 경기 북부권 지역으로 열심히 임장 다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이유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으리라. 서울에서 깔고 앉아 있는 주거비용으로 경기 북부지역 신축 아파트로 옮긴다면 가성비 측면에서 최고이지 싶었다. 청정한 공기는 덤이다. 나의 임장 발길이 분주해졌다. 마음에 드는 지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양주 옥정신도시였다. 필이 꽂히니 양주 옥정신도시 나들이가 빈번해졌다. 구석구석 탐색해 본 결과, 경기 북부지역에서 옥정신도시만 한 곳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주 보면 정드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르지 않았다. 남녀 간 연애 감정처럼 나는 옥정신도시와 사랑의 불꽃을 태우기 시작했다.
옥정신도시가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은 교통이 다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추후 교통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라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반면 나와 같은 퇴직자는 교통 편리의 유무가 그리 중요한 항목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양주 옥정신도시는 내 집 마련이 힘든 젊은 층은 물론 퇴직한 노인들 거주에는 최고라 생각되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은 복잡할 뿐 아니라 오래된 주택이라 불편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구축에 살아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수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다. 손재주라도 있다면 셀프 수리라도 할 텐데, 나는 자타 공인 똥손이라 매번 비용 감당도 만만하지 않았다. 인건비가 좀 비싸야지. 양주 옥정신도시 아파트는 거의 신축이다. 눈독 들이고 있던 아파트는 23년에 준공한 신생아였다. 양주옥정LH엘리프. 내 마음의 기울기는 이미 옥정신도시 양주옥정LH엘리프로 기울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왜 아니겠는가. 강북구 수유동의 모든 것들이 눈에 익었고, 30년 넘게 살면서 아는 사람도 많아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낯선 도시로 이동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아내의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럽게 아내의 의중을 타진했다. 예상은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아내의 반응이었다. 포기할 나도 아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기싸움으로 결판내야 한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남편이라고 강제력을 발동할 수 있겠는가. 어림없다. 큰 일 날 소리다. 조용한 설득 작전이 필요했다. 드라이버를 겸한 옥정신도시 방문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신도시는 잘 조성된 공. 사적인 시설들이 즐비하다. 아내는 편리성도 선호하지만 무엇보다 깨끗한 것을 좋아했다. 이런 면에서 옥정신도시는 아내의 만족도를 높여 주기에 충분했다. 아담 사이즈 옥정호수공원, 호수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게 조성된 옥정호수도서관과 옥정스포츠센터는 시민들의 지적인 충족과 건강지킴이 시설로 압권이었다. 26년과 30년에 7호선 옥정역과 옥정중앙역이 개통 예정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생활에 필요한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옥정중앙상가가 맡고 있다. 하천을 따라 조정된 산책길은 고즈넉한 시골길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운치 만점이다. 마지막으로 이곳 하나만 보여주면 게임 아웃 될 것 같았다. 마트킹이다. 나는 상호가 킹마트인 줄 알았는데 마트킹이었다. 마트킹이 궁금하신 분은 검색창의 도움을 받으시라. 양주는 서울에 비해 인구밀도가 한참이나 낮아 공기를 많이 흡입해도 누구 하나 태클 걸지 않을 것이라는 농을 건네며 아내를 향한 굳히기에 돌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딴지를 건다면 히든카드가 있다. 아내는 서울에서 준공 30년이 넘은 올드 주택에서 대부분 월세와 전세(자가는 잠깐)로 전전했던지라 대단지 신축 아파트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남편으로서 비겁하지만 아내의 신축 아파트에 대한 로망을 미끼로 헤드락 작전을 펼치면 유효타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요지부동의 아내를 힘들게 설득했다고 아이들에게 나의 노고를 치하해 보지만 아내는 나에게 설득당했다기보다 신축아파트와 신도시에 대한 로망에 스스로 넘어간 것이리라.
결국, 우리는 지난 8월 22일 33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한 제2의 고향 강북구 수유동에서 경기도 양주시 옥정신도시로 이사했다. 두 노인이 거주하기 알맞은 25평형 아파트로 가성비 측면에서 엄지 척이다. 옥정신도시 이사에 대한 아내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90점은 되지 싶다. 3개월 조금 지났지만 아내의 화사한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여름에 이사하여 잠깐의 가을을 맛보고 엊그제 눈 내리는 겨울까지 세 계절을 겪었다. 따스한 내년 봄, 단지 주변 나대지에 파릇파릇 돋아 날 쑥, 냉이, 달래를 보며 옥정신도시 생활을 만끽할 것이다. 더불어, 어쭙잖은 글 솜씨긴 하지만 '위의'라는 필명으로 양주 옥정신도시의 면면을 그림처럼 묘사해 볼까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