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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애 Dec 05. 2023

내일과 내 일이 아닌 일(9)

오해가 있었겠지, 그랬겠지.

    “아까 해 뜰 때 말이야. 무슨 소원 빌었어?”

    효진이 먼저 일어나 깔고 앉았던 파란색 접이식 방석을 착착 개며 물었다. 나는 눅눅해진 종이컵, 손 닦은 물티슈를 한데 모아 봉지에 담으면서 답했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달라고 빌었지.”

    효진은 별 반응 없이 기지개를 크게 켰고, 사진을 몇 장 더 찍고는 앞장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앉은 자리를 한번 둘러보고 효진의 뒤를 쫓았다. 하나로 묶인 효진의 머리칼이 걸음을 따라 좌우로 경쾌하게 흔들렸다. 그 뒤통수의 리듬에 맞춰, 효진은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깔딱고개 삼거리에서 양쪽으로 갈라진 길 중간, 팻말을 바라보던 효진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심결에 효진의 뒤를 쫓다가 팻말을 봤는데 효진이 향한 곳은 하남 방향 하산길이었다.

    “효진아!”

    다급히 불러 봤지만, 효진은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걸이라 아래에서 다시 이어지는 길이 있나 싶어 뒤를 쫓다가도, 아무래도 이상해 위치를 확인하려 휴대폰을 꺼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제부였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무작정 “처형, 지금 제 와이프랑 있어요?” 하고 물었다.

    “아, 네. 그런데….”

    “그럼 어디 한번 바꿔 보시죠? 지금 당장.”

    제부가 까칠하게 끼어들며 내 말을 막았다.

    “효진이가 먼저 내려가서요. 따라잡으면 다시 전화 줄게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이어 물으려는데.

    “씨발, 어디서.” 

    제부가 욕을 했고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까지 수화기 너머로 똑똑히 들려왔다.

    “제부. 지금 뭐라고 했어요?”

    목소리가 제멋대로 떨리다 새된 소리가 나자, 짧은 정적 끝에 그가 목소리를 바꿔 사과했다.

    “아. 죄송해요, 처형. 제가 흥분해서. 말이 헛 나왔어요.”

    제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효진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확인 차 전화 드린 거였어요. 이따 만나게 되면, 전화 주실래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처형.”

    횡설수설 사과를 늘어놓기에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그가 내뱉은 욕도 욕이지만 ‘확인 차’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서였다.

    전혀 다른 사람 같네, 생각이 들었지만 효진이 무얼 하든 따스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떠올랐다. 둘 사이 가벼운 오해가 있었겠지, 그랬겠지. 내가 주저하며 고민하는 사이 효진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 아래 조그맣게, 성큼성큼 멀어지는 효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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