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55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55
ㅡ 역사와 소설, 그리고 허상 속 인간 ㅡ
가끔 우리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유명인의 모습을 목격 합니다. 한때는 영웅이었던 인물 이 순식간에 비난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시대 흐름과 편의에 따라 누군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또 때로는 가차 없이 무너뜨립니다.
최근 제가 역사 관련 글을 쓰면서, 이런 일이 비단 현대 유명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역사 속 인물들 역시 시대 시선과 해석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로 덧칠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 김동인 소설 '대수양'과 '운현궁의 봄'을 읽으며 '수양대군' 과 '흥선대원군'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오랫동안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들 대부분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와 같은 허구에서 비롯된 창작된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요.
진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영웅’ 으로 추앙해 온 인물들은 정말 그 이름값만큼의 인물이었을까요?
반대로, 우리가 ‘악인’이라 단정 지은 인물들은 정말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만했을까요?
물론 이런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면, 우리가 존경하고 따르던 역사적 위인들조차 부정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고정관념 껍질을 벗기고, 새로운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더듬고, 기존의 시선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 말입니다.
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역사를 통해 인간을, 인간을 통해 또 다른 역사를 들여다보는 글을요.
단 한 편의 소설로 인해 수많은 인물들이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르게 평가되는 일은 흔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관중 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 속 '조조 입니다.
우리는 ‘조조’ 하면 간웅, 혹은 교활하고 야비한 인물로 떠올립니다.
하지만 진짜 역사 속 조조는 다릅니다.
'조조'가 남긴 시, 단가행(短歌行)
일부를 보겠습니다.
對酒當歌
술잔을 마주했으니, 마땅히 노래라도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人生幾何
인생이란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인가.
譬如朝露
그저 풀잎 끝에 맺혔다 사라지는 아침 이슬 같을 뿐.
去日苦多
아, 지나가버린 시절들이여. 아쉬움만이 쌓이는구나.
이 시에서 드러나는 조조는 감수성이 깊고 인간적 인물 입니다.
‘간웅’이라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지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삼국 시대 인물들은 대부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 입니다.
이 소설은 삼국시대가 끝난 지 천 년쯤 지난, '원말명초'(元末明初) 혼란기 속에서 '나관중'이라는 작가에 의해 창작되었습니다.
그는 유비, 관우,장비, 제갈공명을 중심으로 한 '촉한정통론'을 바탕으로 성리학과 충효사상을 강조했으며, 유비의 정통성과 조조의 패도를 극명히 대비 시켰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정사의 조조가 아닌, 소설 속 조조를 기준으로 삼국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지요.
하지만 삼국시내 직후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는 조조를 전략과 리더십, 합리성을 갖춘 최고의 인물로 평가합니다.
진짜 역사와 허구의 이미지 사이 에는 이처럼 큰 간극이 존재 합니다.
드라마나 소설은 결국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문학입니다.
때문에 그 속 인물들은 실제 역사 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극이나 소설을 통해 역사를 흥미롭게 접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을 함께 기르는 일입니다.
진짜 역사를 알고 나서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그 재미는 훨씬 더 깊어집니다.
특히 <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를 읽고 본다면 그 흥미는 백 배는 될 겁니다. ^^
이처럼 대중매체는 때론 정사보다 더 강력하게 인물의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시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악인이 됩니다.
삼국의 마지막 승자는 유비도, 손권도 아닌 조조의 나라를 빼앗은 '사마의' 손자 '사마염'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비를 충신, 조조를 간웅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도 유사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위대함을 강조 하기 위해, 경쟁자였던 '원균'이 과도하게 비하되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수많은 '허상 속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유명인일수록 더욱 그렇지요.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로 덧씌워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허상 속 나’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나’란 누구일까요?
우리는 과연 한평생을 살아가며 진짜 ‘나’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있을까요?
대부분은 허상을 진짜라고 착각한 채 살아갑니다.
하긴, 그것을 온전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그들도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이니까요.
지금 이 시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잠시라도 허상 속 인간을 벗겨 내고, 진실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려는 고민을 품고 살아 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하고 소중한 삶이 아닐까요?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