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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20. 2019

사실에서 시작하고 견해로 도약하세요

사실과 견해

글쓰기 수업에서, 글의 구성에 관해서 물어보면 대부분 서론-본론-결론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그런데‘서론-본론-결론으로 글을 써 본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니라고 한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돌이켜보면,나도 글을 쓸 때는 서론-본론-결론으로 쓰라고 배웠지만 그렇게 써 본 적이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고, 적당히 고쳤다. 그래도 글쓰기에 큰 문제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독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일단 서론-본론-결론이라는 말 자체를 잊자. 그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 우리는 사실과 견해라는 두 요소만 가지고 글을 구성할 것이다. 


사실과 견해로만 글을 구성한다면, 우리가 쓰는 글의 기본 구조는 넷 중 하나다. 첫째, 사실만 기록한다. 둘째, 견해만 기록한다. 셋째, 사실을 기록하고 견해를 쓴다. 넷째, 견해를 쓰고 사실을 기록한다. 

우리는 사실에서 시작하거나, 견해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1)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어머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젠 화장만으론 주름을 감출 수 없구나…”

(2) 시간은 공평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른다. 시간은 특히 부모라는 존재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이기주의『언어의 온도』중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의 첫 부분이다. (1)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사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 사실, 그리고 어머니가 실제로 했던 말처럼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을 기록했다. 


이와 달리, (2)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떠오른 저자의 주관적 견해를 담고 있다.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누군가는 시간이란 모두에게 공평하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가 빠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젊은 시절과는 다른 시간 감각 때문일 뿐, 시간이 흐르는 물리적 속도는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시간은 부모에게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혹한 형벌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윗글에 드러난 작가의 생각은 말 그대로 작가의 생각일 뿐이다. 


아마도, 저자는 “화장만으론 주름을 감출 수 없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에서 ‘늙어감’에 관해서 생각했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이 질문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예문을 다음과 같이 고쳐보면, 저자가 어떤 생각의 경로를 거치고 있는지 좀 더 분명해진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어머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젠 화장만으론 주름을 감출 수 없구나…”

(부모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간은 부모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시간은 공평한 것 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른다. 


여기서 우리는 사건과 견해가 연결되는 하나의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을 기록하고, 질문을 건져내고, 질문에 답한다. 


2008년 9월 24일.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길에 LA를 경유했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야 노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중략)

맥이 빠져 있자니 지난 일이 떠오른다. 2년 전 멕시코시티에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시애틀을 경유했는데 그때도 이동식 하드디스크를 잃어버렸다. (중략) 잃어버린 이동식 하드디스크에는 그간의 글이 모두 백업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졸지에 써놓은 글이 몽땅 날아간 것이다. 

속상했다. 하지만 파일들이 사라지고 나니 그때까지 어떤 글을 써왔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기가 찼다. 외부의 저장장치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상기해내지 못하는 문장들을 써왔구나. 결국 자기 몸에 남지 않는 지식들과 씨름하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윤여일의 『여행자의 사고』 에서 옮겼다. 그는 첫 문단에서 여행 중 집필을 위해 기록했던 노트를 잃어버린 사건을 기록한 후, 두 번째 문단에서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사건을 기록했다. 글이 여기서 끝났다면, 독자들은 ‘참 정신없는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문단에서 저자는 견해로 도약한다. 저자가 경험에서 건져낸 질문은 ‘지금까지 어떤 태도로 지식을 대해왔는가?’, 혹은 ‘바람직한 앎이란 무엇인가?’정도일 것이다. 독자는 세 번째 문단에 와서야, 첫 두 문단의 사례를 통해 필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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