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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Feb 03. 2016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알을 품은 섬, 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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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왕의 말은 펄펄 끓는 쇳물을 부은 것과 같다고 했다. 단단하게 굳어서 결코 돌이킬 수 없다. 


기불은 천천히 활과 화살을 잡았고, 신하들은 자리에 선 채 떨기만 했다.     


왕이 다시 말했다.     


“내 아들이 일곱이었는데, 다섯이 나보다 먼저 삼도천을 건넜다. 자식 앞세운 아비가 왕 노릇하면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먼저 떠난 아이들을 만나고 싶구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도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꽤 있다. 


함께 떠나자꾸나. 나와 함께 삼도천을 건널 무리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도록 하라. 


아울러 내게 화살을 날린 기불은 넉넉히 대접해서 보내도록 하라. 그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므로 왕에게 활을 겨눴다 해서 역적죄를 물을 수 없다. 이게 내가 이승에서 왕 노릇하며 남기는 마지막 말이다.”     


왕은 천천히 일어나 금박으로 입힌 상자를 내왔다. 그리고 기불의 활 앞에 섰다. 신하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기불이 화살을 당겼고 왕은 쓰러졌다.     


이 나라에선 큰 어른이 죽으면, 시신을 깨끗이 닦은 뒤 대례복으로 갈아입힌다. 그리고 하루 밤낮이 꼬박 지나면, 넓은 공터에서 죽은 자의 유지가 당긴 상자를 연다. 그리고 다시 이틀 밤낮이 지나면, 조상이 묻힌 산으로 옮겨져 땅에 묻힌다. 


죽은 자가 남긴 상자에는 대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문서가 담겨 있는데, 여기 이름이 적힌 이들은 반드시 함께 묻히게끔 돼 있다. 간혹, 여기 이름이 적힌 자가 함께 묻히기를 거부하고 도망칠 때가 있다. 그럼 온 나라의 장정이 일제히 뒤를 쫓는다.     


왕이 죽고 하루가 지난 뒤,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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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여섯 번째 이야기 : "그 활로 나를 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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