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 산업이 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갑자기 펼쳐진 것에 대하여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어떤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할지 우리는 늘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업무는 현장에 뛰어들어 경험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평생 해야 할 '돈을 버는 행위'를 이왕이면 나에게 의미있는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실제 직장생활을 해 보니 좋아하는 일이든, 잘하는 일이든 그것을 '일'로 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부분들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그 '의미'가 나로 하여금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도록 말이죠.
돌이켜보면 커리어는 제가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고민해 온 주제인데요. 저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학생으로서 공부만 해왔다보니 잘하는 일에 대한 확신은 없어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지 아니면 취미로 남겨두어야 할지에 대해 더 고민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일은 영화든, 공연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감상'하는 것이었는데요. 그런 콘텐츠들을 보기만 하는데 돈을 주는 일은 사실 없을 것 같고.(예전에 한참 급부상했던 '홈 프로텍터(속칭 백수)'라는 직업도 매력적이긴 했지만, 무보수라는게 가장 큰 단점이더라구요.) 그러면 콘텐츠에 대해 쌓아온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고,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제가 어떤 분야의 연구자나 전문가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연관은 없더라도 콘텐츠 관련 일을 하면 어떨까 싶어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다양한 경험들도 해봤는데, 취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저는 막상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경험해보니 제가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배고플 것 같았고, 환경도 제가 짧게 경험한 것으로는 안정적이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공연이나 영화는 돈을 많이 벌어서 관객으로 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다른 일을 택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정반대나 관련 없는 일은 아니고 그 당시 조금 더 대중적으로 소비가 많이 되고 있던 콘텐츠 관련 회사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하다가 기회가 되면 다른 팀이나 회사 옮겨야지 하는 생각으로요.
막상 들어가보니 일단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업무 자체가 일반적인 직무는 아니라 숙련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고, 그러다보니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여력이 되지 않아 점점 멀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워라밸이 보장되고 대우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원래 하고 싶던 일이 아니다보니 미련이 자꾸 남더라고요. 그즈음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했었는데, 두 주인공들이 힘든 과정도 많이 겪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달려가는 걸 보며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이 봤다면 '최근에 차였나...' 싶을 정도로 사연 있는 사람처럼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마지막에 두 인물들은 각자 눈부신 성공을 했지만 함께 할 수도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들이 스쳐지나가는데 저는 스타가 되는 거창한 꿈도 아니라 그저 소박하게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한 상황이 서글퍼서요.
그럼에도 저는 좋아하는 걸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용기가 그 당시까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 초년생으로 젊을 때 고생하는게 낫다고 많이 하지만, 힘들게 시작해서 언제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평생 고생하고 끝날수도 있다는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이 컸거든요. 이미 다른 일을 시작한지 조금 되었기 때문에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세상 일은 알 수 없는게, 어느 날 우연히 최애가 생기면서 만난 새로운 세계를 통해 제가 하고 싶던 일이 직업으로 삼기에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영화와 음악 같은 온라인 콘텐츠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고, 공연이나 페스티벌 등의 오프라인 콘텐츠들도 이전보다 더 대중화되고 팬덤 비즈니스가 본격적인 산업이 되는 시대가 되었더라고요. 그리고 최애를 위해 일을 해보는 경험을 하면서 저를 많이 알게 되었고,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도전했고 30대 중반에 다시 초년생처럼 현실에 부딪히며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물론 쉽진 않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서 당분간은 계속 열심히 달려나갈 생각입니다.
이 글은 저와 같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게 되었습니다. 1부 '누구나 마음 속에 최애 하나쯤은 있잖아요'는 지금껏 거쳐온, 그리고 제 인생 가장 적극적이었던 덕질에 대한 이야기이고, 2부 '누군가의 최애를 위해 일하게 되기까지'는 현생보다 더 쉽지 않은 덕질을 하며 도전하게 된 커리어 전환의 순간과 제가 시도한 방법, 그리고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담았습니다. 그리고 3부 '누군가의 팬과 업계 관계자 근처 먼지 어딘가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누군가의 팬과 업계 관계자 근처에서 일하며 느낀 생각들입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고, 이미 고민을 마치고 뛰어든 분들에게는 아 이런 애들도 있구나 이해하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고, 또 공연쪽 경력이 많은 분들은 귀엽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1년차가 할 수 있는 말이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 자체도 고민하긴 했지만, 초년생의 시선에서 본 곳은 이렇더라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로를 고민중인 분들께는 결국은 멀리 돌아오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여러 케이스 중의 하나로 참고해주시면 좋겠고요.
저도 현재 진행형이라 쉽진 않지만, 최소한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감히 업계나 어딘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훨씬 대단한 분들이 많지만 그 중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편하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