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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온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을 때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직장인은 처음인가요

by 최애일 aisle choi

그렇게 일상의 위로를 받으며 취업난을 뚫고 회사원이 되었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대신 엇비슷하게 나쁘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7~8년 가까이 일을 했지만 사실 애정이나 즐거운 순간보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순간이 많았고, 루틴이 있는 업무를 하다 보니 스스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규직만 바라보고, 또 정규직이 되고 나서는 승진을 바라보고, 내가 있는 곳은 승진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고. 그렇게 회사원에게 주어지는 삶에 익숙해지다가 회사가 일부 구조조정 비슷하게 진행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한다.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직장은 나의 평생을 약속해주지 않으며,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직원을 정리할 수 있구나. 그리고 내가 그동안 열심히 일을 해왔더라도 회사는 언제든 나를 내보낼 수 있다. 그렇게 냉혹한 현실을 깨닫고 나자, 장기적으로 제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태 해온 일 외에는 경험해본 회사 생활도, 직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마음 속에서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내 무언가’를 찾아야겠다 싶어 그때부터 주경야독처럼 대외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겸직이 금지되어 있기도 했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긴 하지만 본업에 방해가 되는 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업무에 충실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개인 시간과 잠을 줄여 여러 가지 활동을 했습니다. 또래 상담사, 문화기획자, 문화창업플래너, 미디어교육사나 출판기능사 등 실무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 각종 수업 및 멘토링 등…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지만, 직업으로 삼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들이 있었고 마침 코로나도 터지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목적지 없이 표류중이던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울감도 많이 있었고, 본업으로 만족감이 없다보니 계속 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이던 어느 날, 저는 지인의 추천으로 한 예능을 보게 됩니다.


그 예능은 직업인으로서, 각자 직업의 명예를 걸고 경쟁하고 협력하고 승리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이렌 : 불의 섬> 이었습니다. 재미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평소 넷플릭스를 바로바로 보지 않던 나는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감명받아서 그 날 새벽 네 시까지 전 편을 정주행하고, 그 때 저의 롤모델 겸 최애를 발견하게 됩니다.


최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이렌 : 불의 섬> 프로그램을 먼저 간단히 소개드리면, 20명 이상의 일반 직업인 출연자가 나오고,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바이벌장이 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각자 직업이 다른 분들이 스턴트팀을 제외하고는 서로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팀이 되어 서로 기지전과 아레나 전 등을 하며 기지를 탈환해가는 게임을 진행하며 최후의 한 팀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시작부터 갯벌을 왕복하는 등 체력적으로, 그리고 언제 기지전 사이렌이 울릴 지 모른다는 정신적으로 극한으로 가는 상황을 만들고, 한계 속에서 어떻게 하는지 등을 보여주었는데, 단순히 나 힘세요가 아니라 협력하고 지략을 펼치고, 직업의 특성을 활용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등 다양하게 강하고 멋진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승은 한 팀이 차지하긴 하지만 실은 그 사람들 모두가 우리 사회를 위한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경찰, 소방관, 국가대표, 경호원, 스턴트 등) 그리고 이기든 지든 멋진 게임이었다 우린 최선을 다했다며 서로 다독이고 웃는 걸 보며 평소 조명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사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하자면 스포츠정신이 빛나는 올림픽 경기를 봤는데 실은 모두가 우리 국가대표인 느낌, 사이렌을 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괜히 뿌듯한 그런 마음. 생활 속 현실적인 영웅들의 모습을 본 느낌이 듭니다. 마블 세계관의 히어로들 못지 않은 분들이 투철한 사명감과 직업의식까지 갖고 있다니!

그런 멋진 프로그램이라 넷플릭스 인생 프로그램이 되었다. 다들 시간되실 때 한 번씩 꼭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당시 한참 시청자들 의견으로 평범한 직장인들은 절대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직장인들만 모아서 할 거면 '종이인간의 섬'을 해야된다 그런 농담 아닌 농담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직업에 대한 회의가 있거나, 강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은 분들은 한 번 꼭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그 분들이 모여서 낸 인터뷰집 <하루의 반을 일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도 추천드립니다. 인생에서 고민이 되는 시점에 보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최애 찾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 일반인 출연자분들이라 만약 덕질을 하시려면 조금 험난할 수 있어 그 부분만 참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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