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별도 달도 따다주고 싶은 마음에 자처한 고난의 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돈도 시간도 마음도 건강도...

by 최애일 aisle choi

사실 저는 리더보다는 배후세력 쪽에 가깝지, 먼저 나서는 성격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 지원자가 나왔으면 포기했을수도 있을 것 같지만, 공석이었던 운영진 지원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 한명이었기에 그 날부터 운영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기존 운영진분들이 계시긴 했지만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역할이 비어있던 지라, 저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과 함께 커뮤니티 운영 정비와 함께 2달 뒤에 있을 최애의 생일 이벤트를 함께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업무를 처리나갔습니다. 기존의 체제 정비도 필요했고, 프로그램 출연 이후 시들해지는 팬들의 마음도 다시 모으고 싶었고, 최애의 생일도 곧 다가와서 이벤트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디데이는 정해져있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끝도 없어서 고민 끝에 저를 갈아넣기로 했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도 일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민하다 기존의 운영 방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오픈채팅방 참여중인 인원들의 의견을 우선 취합했습니다. 그리고 운영진 회의를 거의 매일 진행하며 생일 이벤트 관련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적인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영진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으로 느껴지지 않게끔 공지사항이나 진행과정은 구성원들과 공유하되, 텍스트로 딱딱하게 하기보다는 카드뉴스의 형태로 가독성을 높여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프로그램 종영 후 이전에 인원이 많고 참여가 활발하던 시절과 달리 모금 자체가 쉽지 않아 여러 과정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최애를 좋아하는 마음은 같기에, 만약 누군가가 의욕적으로 나선다면 함께 동참해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보니, 진행 과정이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 순간 다사다난했습니다. 최애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모였지만 사실 그 외에는 공통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익명의 집단이기에 어느 장단에 맞추기도 어려웠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방식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최애의 상황이나 사정상 진행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보니 계속 변동이 발생했지만 사정을 설명해도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애초에 최애를 위해 할 수 있는 예산이나 리소스는 모이지 않는데 하고 싶은 것은 최소 몇 백 이상 드는 것들이 많았고,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받은 '도시락 이벤트'는 그 날 다른 일정이 있고 음식이 상하기 쉬워 전달하기 어렵고, 그래서 대안으로 커피차나 간식차를 알아보니 취식할 공간이 또 마땅하지 않으며, 이것저것 다 안되어서 선물을 전달하고자 하니 일정이 부족하여 모두의 의견을 취합해 배송받고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지는 식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얘기가 충격 실화인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금, 중간보고, 집행상황, 결과보고서 공유까지 최선을 다해 진행했고, 익명방의 특성상 대상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상당히 강력한 클레임에도 성심성의껏 응대하고, 동시에 조촐하지만 오프라인 생일축하 이벤트도 준비하고 메시지북도 만들었습니다.


준비하면서 알아본 게 아쉬워 후보였던 이벤트들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생일 이벤트의 경우 최근 생일카페가 많이 진행되는데, 생일 축하를 직접 해줄 수 없으니 팬들끼리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한 카페를 대관해 음료와 공간을 준비하고, 컵홀더 이벤트나 사진 전시를 함께 진행합니다. 대관비와 음료 비용을 포함하면 한 곳당 해도 일정 금액이 들며 운영 인력도 필요한데 보통 주최한 팬들이 이벤트 운영까지 진행합니다.

그 외에 도시락 서포트와 커피차·간식차 이벤트가 있습니다. 도시락 서포트는 최애가 공연이나 방송 등 일정이 있을 때, 현장에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시락을 제공하는 이벤트입니다. 커피차나 간식차의 경우 발전기, 원재료비, 추가 간식비 등이 소요되며 현수막과 스티커 등의 디자인도 추가로 필요합니다.

또 선물 이벤트가 있습니다. 최애가 필요로 할 만한 물품을 정해 예산 안에서 선물을 준비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개인 편지를 모으는 대신, 응원 메시지나 팬들이 만든 콘텐츠를 담은 메시지북을 자체 제작하기도 합니다. 저희도 자체적으로 진행하였으며 200페이지 정도를 팬이 보낸 메시지, 진행한 설문조사, 최애의 사진 등으로 꾸며서 진행했으며 디자인은 SNS를 통해 별도 외주작업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이벤트들은 팬덤의 규모와 상관없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최애가 유명하든 아니든, 소수의 팬이 마음을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팬덤 관련 산업, 즉 팬 비즈니스는 매우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연예인뿐 아니라 운동선수, 유명 크리에이터, 캐릭터까지 응원 대상이 다양해졌습니다. 심지어실존하지 않는 인물인 ‘펭수’를 위한 서포트도 있을 정도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이벤트가 열리고 있으며, 팬문화는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습니다.이름조차 생소한 가수인데도 이미 여러 차례 서포트를 진행한 팬들이 있고, 혼자서 수백만 원을 사비로 들여 제작을 감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정도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의 총합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요즘의 팬 활동은 정말 적극적입니다. '행동하는 덕질'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단순히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굿즈를 구매하고, 응원을 넘어 근조화환, 항의트럭 등을 기획사에 보내기도 하고, 금액에 상관없이 생일카페를 혼자 열기도 하고, 인기를 얻은 스타도 아니고 연습생인데도 서바이벌에서 데뷔할 수 있도록 자체 투표 독려 이벤트에 어마어마한 상품을 걸기도 합니다. 농담처럼 “팬 장사를 해야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과 노력과 진심을 나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위해서 쏟는 것은 정말 단순하게 '덕질'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아쉬울 정도로 대단한 과정이지만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하느라 현생을 갈아넣다시피 하다보니 건강에 무리가 왔습니다. (애초에 잠을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보니 잘 수가 없어 매일 새벽 세네시까지 일하고 쪽잠을 잔 뒤 출근하는 식의 삶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생일 이벤트를 마무리 한 이후로는 방을 유지하는 정도만 하다가 종료 후 기존 운영진에게 인수인계하고 나오며 파란만장한 운영진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keyword
이전 04화예상치 못한 운명처럼 만난 어화둥둥 나의 최애